2010.09.13
요4:1-4
북조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는 주전 722년 멸망 후 약 748년간이나 유대인이 통행하지 않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4:4) 하였습니다. 헬라어로 요4:4은 ‘꼭 필요하다, 반드시 마주치다’는 뜻의 ‘데이’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미완료형 시제로, 항상 그렇게 반복했거나 계속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그러셨듯이 남들이 다니지 않는 사마리아 길을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1. 유대와 사마리아는 꽉 막혀 있었습니다.
다윗의 통일왕국은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을 취하고 그들의 우상을 숭배한 범죄로 인해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왕상11-12장).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2개 지파로 남조 유다 왕국(수도: 예루살렘)을,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은 10개 지파로 북조 이스라엘(수도: 디르사)을 세웠습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각각 금송아지를 세워 우상숭배하게 하였습니다(왕상12:27-33). 북 이스라엘 6대 왕 오므리가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긴 후(왕상16:23-24), 그의 아들 아합 왕 때 바알 신앙이 흥성했고(왕상16:29-33), 이후로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어, 결국 그 죄악으로 인해 왕국 성립 약 208년 만인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합니다(왕하18:10). 성경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멸망 당시 앗수르 왕이 강제로 사마리아인들을 앗수르 지배하에 있던 여러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앗수르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 아람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혼혈 잡족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는 순수 민족성을 상실하고 우상숭배의 땅이 되었습니다(왕하17:24-41). 이는 선민 이스라엘 족속의 씨를 멸절하여 하나님의 뜻을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음모였습니다. 이에 비해 3차(주전 605, 597, 586년)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주전 537년 제 1차로 귀환하여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한 남 유다의 유대인들은 민족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킨 남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사마리아인을 부정한 이방인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방해한 것도 바로 그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습니다(스4:1-6).
2. 예수님은 꽉 막힌 길을 뚫고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의 단절은 약 748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요4:9). 유대인들이 북쪽 갈릴리 지방을 여행하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시간이 두 배 가까이 걸리는 요단 동편의 베뢰아 지역이나 지중해 연안의 해변도로로 우회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 관습을 뛰어넘어,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관통하여 지나가셨습니다(요4:4). 예수님은 그 곳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 하나를 만나 자신이 생수의 근원인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드러내시고, 이 사실을 그 여자가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므로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요4:28-30, 39). 또한 그들의 요청으로 예수께서 그 곳에 이틀을 유하시며 가르치신 그 말씀으로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요4:40-42). 유대 관습에 젖은 제자들은 사마리아 땅을 밟는 것 자체도 썩 내키지 않았던 데다가, 예수께서 그 곳의 한 여자와 오랫동안 대화하시는 것은 더욱 이상히 여겼습니다(요4:27).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가시기 전에 이미,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지만 만족이 없고 늘 목말라 하던 한 여자가 야곱의 우물에 물 길러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요4:7-26). 또한 그 여자를 통해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될 것을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미리 보고 아셨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비난받을 것을 무릅쓰고 굳이 사마리아 길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를 받지 않으셔도 한눈에 사람의 속, 중심, 심장 폐부까지 다 아시고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요2:24-25, 16:30, 눅2:35).
3. 우리도 막힌 길을 뚫고 지름길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하러 간 사이, 제자들이 예수께 식사를 청하자, 예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였지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31-38). 이는 예수께서 벌써 곡식이 누렇게 익어 당장 낫을 대지 않으면 튀어나올 정도가 된 사마리아의 수많은 영혼을 미리 보시고 구속사적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통행하시므로, 오랫동안 흑암에 앉은 백성이 약 748년 만에 큰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9:1-7, 마4:13-16, 엡5:8,14). 성도 여러분, 나의 부모, 친척, 동창, 선후배뿐 아니라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는 길이 아직 막혀 있습니까? 그들에게 가는 길이 있는데도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같이 750여 년을 남북 38선같이 가로막혀 그간 왕래하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엄히 명하노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1-2)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막힌 길도 없으며, 못 갈 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그것에 감사 감격하여,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마16:26, 20:28).
결론 :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는 지름길을 택하신 이유는 결코 지역적이고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적 경륜을 성취시키는 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4:4)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오랫동안 왕래하지 않아 굳게 막힌 길을 뚫고 지름길로 통행하며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행13:48)에게 구원의 복음, 영생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서 많은 알곡을 추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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