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4
시험 감독을 하러 낯선 학년 낯선 교실에 들어갔다. 분주한 교실을 정돈시키고 시험지를 배부하자 교실은 고요해진다. 교탁에 서서 보면 머리 숙인 까만 머리통들만 보인다. 돌이 굴러 가는지, 머리를 굴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반 몇 분은 집중된 기운에 숙연해질 정도다. 순간 문득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이상야릇하다. 분명 직장생활을 하던 나였는데, 나는 영어 선생님이 되어 중간고사 감독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의 10년을 직장에서 그 이후 7년을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보내던 시기였다. 그 이상한 자리에서 나는 특이한 학급 표어를 보았다.
“나도 쓸모가 있다.”
이 학급 교어를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왠지 큰 위안이 되는 글이었다. 맞아, 우리는 다 쓸모가 있어. 누가 꼭 말해주었으면 하는 글을, 이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볼 수 있다니, 이 학급은 왠지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쓸모가 있을 텐데...”
분주하던 일상이 모두 쓸려 내려가고 남은 것은 시간뿐인 계절이 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사회는 나를 무용지물로 보는 것 같은 시기였다. 내가 가장 바쁜 날은 오직 주일. 주일에만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빴다. 하나님만 나를 사용해주시는 구나. 기쁘면서도 울적한 느낌은 나를 자꾸 돌아보게 했다. 하나님 나를 왜 부르셨어요? 나를 왜 태어나게 하셨어요?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나를 어디다 쓰 실 건데요? 다 같은 질문이었다.
나에겐 타고난 재능 같은 건 없었다. 딱히 떠오르는 잘 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세상은 경력자를 뽑는데, 교회는 신입도 환영. 이런 나도 교회에서는 쓸모가 있었다. 노래도 못하는데 성가대에 뚝하니 세워준다. 악보의 콩나물을 보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옆 사람의 소리를 듣고 따라 부르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 서있다. 그래서 성가대가 좋았다. 나 같은 사람도 노래할 수 있게 해주다니.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를 한다니. 찬양이 시작할 때 마다 늘 먼저 소리를 낼까봐, 박치인 내가 얼마나 떠는지 아무도 모를 꺼다. 요셉 선교회 성가대에서 쓸모없는 자를 쓸모 있다 해주시는 은혜를 입고, 그에 용기를 얻어 지금은 실로 성가대에서 찬양을 한다. 이번에는 영어다. 영어 가사로 찬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사를 틀릴까봐 악보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인원은 왜 이리 적은지. 내가 노래 못하는 거 딱 티가 나는 인원이다. 어떤 날은 소프라노가 2명, 3명. 성가대 찬양의 마지막 소절은 언제나 저 높은 곳에서 내 마지막 호흡을 가져가려고 작정한 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 마지막 소절을 부르다 김빠진 소리도 내고, 삑사리도 내고 민망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으면 내 심장이 얼마나 쿵쿵 뛰는지 손도 함께 떨린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이시다. 잘 못하는 사람을 모아다 즐겨 사용하신다. 그래서 내가 드릴 수 있는 감사는 출석을 하는 거다. 허락하신 그 자리를, 나를 사용해주시는 그 자리에 서는 거. 그게 감사고 그게 기쁨이다. 그래... 난 뭘 그만두는 것도 잘 못하는구나. 쓸모없는 것 같은 나도 쓸모 있다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좋다. 그래서 나는 참평안지 기자로, 문화예술인선교회 봉사자로, 실로선교회 성가대로, 하캄 영어선생님으로 쓰임 받고 있다, 내년에는 5대교구 구역장이라는 새로운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5대 교구에서 “나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석을 다짐해본다.
우리를 쓸모 있다 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눈에는 우리 모두가 “여호와이레”의 사람들이지 않을까? 만세전에 쓰시려고 작정하여 때가 차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주신 아버지. 그래서 돌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고, 굴러가 보련다. 아버지! 저 굴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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