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1
마7:28-29, 살전2:13
본래 인간은 창1장에서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죄 값으로 인류에게 사망이 왔습니다(롬5:12, 6:2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러므로 위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이야말로 영생의 피조물임을 알려 주는 소망의 복음입니다.
1.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와 능력, 창조력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어떤 흉악한 귀신이나 병이 들었어도 예수께서 한 번 만지시든가 말씀 한 마디 하시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바다에 일어난 큰 광풍도 예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아주 잔잔해졌는데(막4:37-39), 이를 본 제자들은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습니다(막4:41). 또 벳새다 들판에 남자만 5천 명이고 여자와 아이까지 합하면 2만여 명이 모였을 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 기도하심으로 다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마14:13-21, 막6:30-44, 눅9:10-17, 요6:1-13). 예수님은 이 표적을 본 사람들이 당신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요6:14-15). 당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라 “이 사람의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마7:28-29, 13:54, 눅4:32).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며 배척하였고(마13:55-57),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백성이 다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기이히 여기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꾀하였습니다(막11:18). 예수께서 인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셨지만, 사람들은 말씀보다 예수께서 베푸시는 기적으로 병 고침과 배고픔을 해결 받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26). 예수께서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시자, 백성들은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리고(요6:35, 41),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며 “어찌 제 살을 주어 먹게 하겠느냐 이 말씀은 어렵도다” 하고는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요6:52, 60, 66). 이때 남아 있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자,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답했습니다(요6:67-68). 헬라어 원어를 직역하면, “당신은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신앙인이 있어야 할 본질적인 자리, 신앙인의 본적, 현주소를 드러내 놓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들의 본질적인 자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소홀하면, 우리 인생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이 장마에 곧 무너지고 맙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役事)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3주간의 성경 강론을 통해 세운 교회입니다(행17:1-2). 이때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믿게 되었는데,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성읍 관원들에게 고발하고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떠나야 했습니다(행17:5-10). 그런데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그 곳까지 쫓아와 무리를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켰습니다(행17:13). 이러한 많은 환란 가운데 세워진 교회이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살전1:3). 바울의 두 번째 감사는 오늘 본문 살전2:13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어나는 말씀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믿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살전2:13 공동번역).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시는 말씀은 말씀 자체가 스스로 일과 사건을 발생시키며 신적인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인간의 생각과 계획으로 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 지식을 받아 행할 때 형통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약 1,500여 년 동안에 34-35명의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으로, 이는 곧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자 구원의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10:17),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요5:2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들을 때 바로 역사(役事)하기 때문입니다(히4:12). 극심한 환란 중에서도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엡6:17, 욥23:10-13).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입술로 전해야 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습니까(롬10:14)?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1:21).
예수께서 중풍병자와 죄 많은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1-8, 눅7:48)고 하셨을 때, 즉시 나음을 입고 깨끗케 되었습니다(요15:3). 예수께서 말씀하시면 바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과(막5:41-42), 죽은 나인 성 과부의 독자(눅7:14-15), 그리고 죽은 지 나흘이나 돼 썩어서 냄새나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형제 나사로(요11:39-44)를 말씀 한 마디로 살리셨습니다. 오늘날 개인과 가정, 직장, 사업에서 터져 나오는 속상해 죽겠다는 아우성이 바로 사망이 아니겠습니까?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와 같이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 불가능하고 재기할 힘이 없다 하지만, 요4장에서 왕의 신하가 “네 아들이 살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더니 아들이 회복되는 기적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마음에 모시고 갈 때,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사망을 향해 호령하시는 한 마디에 생명과 형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 우리 기독교 신자의 위대한 삶의 철학은 창조주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거룩한 교회를 이 세상의 구심점으로 삼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어떠한 절망의 죄악에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하신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낙천적인 소망의 종말관과, 다시 산다는 영생의 소망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 집사(행7:56)를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확신에 찬 복음을 증거하며 죽어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산다는 진리를 믿는 가운데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전진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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