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6
특별기획 신약 성지 답사②_1
바울의 발자취 따라
그리스·로마를 가다
홍봉준 목사
사모스 섬을 출발하여 네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시간에 도착한 밧모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과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하얀색 집들이 그림 같은 밧모섬의 첫인상이었다.
예상보다 늦어진 시간으로 인해 저녁 식사를 뒤로 미루고 곧바로 사도 요한의 계시동굴로 향했다. 계시 동굴 내부에는 사도 요한이 기도할 때마다 손을 짚어 움푹 패인 곳과 사도 요한이 기도할 때마다 이마를 바위에 대고 기도하여 굳은 살이 박혀있었기에, 이마가 툭 튀어나온 사도 요한의 그림 등이 있었다. 그리고 계시를 받을 당시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이 울려퍼질 때 세 갈래로 갈라졌다고 하는 바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져 사도 요한 기념교회는 관람하지 못하였지만, 계시동굴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기도에 전념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도 바울의 경건한 삶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은혜가 되었다.
밧모섬 스칼라(Scalla) 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산 중턱에 걸려있던 붉은 해도 이제 바다 속 자기 집으로 들어간 늦은 시간 식당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밤 12시 아테네로 출발하는 배를 타기까지 밧모섬 해안과 시내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밤 11시쯤 항구로 가서 티켓을 발권하고 기다리니 커다란 페리선이 항구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치 않는 배편이 이곳에서는 버스나 기차처럼 일상적인 교통편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먼저 캐리어를 끌고 탑승하고, 승용차와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들이 쉴새 없이 배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먹잇감 같다.
이렇게 9월 4일, 주일 하루는 오전 예배를 시작으로 세 번의 배를 갈아타며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쯤 아테네에 도착하였다. 흔히 그리스와 로마를 ‘신들의 땅’이라 한다. 그만큼 이곳은 그리스·로마신화의 내용과 유적들이 일상화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은 이처럼 신화와 우상이 넘쳐나는 곳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여 기독교의 세계적 전파라는 위대한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9월 5일, 월요일 그리스 본토 첫 일정은 고린도 지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현재는 1893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된 고린도 운하로 배들이 왕래하지만, 사도 바울 당시에는 ‘디올코스’(Diolkos)라는 자갈길을 만들어 지렛대 등을 이용하여 동서항구에 정박한 배와 화물을 맞은편 항구로 옮겨 교역시간을 단축하였다. 서쪽의 레케움(Lechaeum) 항구와 동쪽의 겐그레아(Cenchreae) 항구를 지닌 교통의 중심지인 고린도는 네로 황제 당시부터 유대인 노예들을 동원 운하를 건설하고자 시도했을 정도로 얇은 허리모양의 지리적 조건을 지녔다. 특히 이곳 겐그레아에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머리를 깎았다는 기록(행 18:18)이 있는 것을 볼때, 바울의 여정에서 뭔가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세운 지역인 것 같다.
오전 10시경임에도 눈부신 햇살을 안고 고린도 운하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고린도 박물관과 유적지로 이동하였다. 고린도는 사도 바울이 1년 반이나 머물며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으며, 베뢰아에서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가 이곳에서 합류,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힘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유대 회당이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르쳤는데, 회당 옆집에 살던 디도 유스도를 만나 그의 집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회당장 그리스보의 온 집안 사람들이 주를 믿고 세례를 받게하였다(행 18:7-8).
고린도 박물관과 유적지 관람을 마치고 그리스식 점심식사를 한 후 아테네로 이동하였다. 사도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이동하였지만(행 18:1), 우리 일행은 일정상 먼저 고린도를 들른 후 아테네로 향하였다. 아테네에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과 주요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특히 사도 바울의 사역과 관련해서는 이곳의 ‘아레오바고’ 언덕과 ‘아덴(아테네)’에서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그리스도와 부활을 증거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리스인들의 자부심이자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된 파르테논 신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사도 바울이 말한 ‘손으로 지은 전’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다’(행 17:24)며 당당히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이다. 또한 파르테논 신전 아래에 있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아덴 사람들을 향해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시작하는 유명한 설교를 하였다(행 17:22-27).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신전과 극장, 수많은 조각상들을 보며 과연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말씀으로 설득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반문해 보며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안고 아테네 언덕을 내려왔다.
다음 날(9월 6일, 화) 우리 일행은 그리스 신탁의 중심 도시라 할 수 있는 ‘델피’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세상의 중심을 확인하기 위해 두 마리 독수리를 양쪽 방향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마주친 곳이 델피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로 옴파로스를 세웠다는 곳이다. 사도 바울의 여정이나 성경과 관련된 사건은 나오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아테네나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델피 신전을 둘러본 후 점심 식사를 하고 그리스의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에 영화 300의 무대였던 테르메폴리스를 둘러보고 희랍 정교회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인 메테오라(Meteora)에 당도하니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관람시간이 지나 수도원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해발 평균 300~550m의 바위 끝에 세워진 수도원의 겉모습만 봐도 믿음의 선진들의 경건한 신앙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공중에 매달린’, ‘매달린 바위’라는 뜻의 그리스어 ‘메테오라’는 이름 그대로 한 번 들어가면 내려오지 않고 평생 바위 위에 세운 수도원에서 청빈과 신앙 수련에 매진했던 수도사들의 정신이 느껴지는 곳이다. 현재 메테오라에는 여섯 개의 수도원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버스로 수도원을 들러본 후 저녁 8:30쯤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고단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 더 고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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