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4
빌 2:19-30
제 19-44호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죽기에 이르러도
빌 2:19-30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갇힌 지 벌써 오래되어 병들었지만, 오히려 빌립보 교회를 자기 가족, 자기 목숨보다도 귀하게 관심 가지고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혹시 석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포기하고, 자신을 대신해서 연단 받고 많이 고생한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했습니다(빌 2:23-24). 그러나 순간으로 변경되어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 목숨을 걸고 일한 사람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위해 헌금하기로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이단자요, 나라의 역적으로 오해받고 로마 감옥에 있고,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라고 해서 말할 수 없는 환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헌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때 에바브로디도가 열변을 토하면서 믿지 않는 자와 교회 사이의 중보 역할을 잘 했습니다. 마침내 교회가 헌금을 해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보낸 것입니다(빌 4:18). 그리고 빌립보 교회로 바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막역한 친구라도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순간으로 등을 돌리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빌 2:30의 공동번역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하여 “그는 여러분이 나에게 미처 해 주지 못한 것을 해 주려고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다가 죽을 고비를 겪은 사람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최전선에 선 사람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습니다. 그 병세가 심해서 죽을병이라는 것입니다(빌 2:27).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 바울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섬기다가 얼마나 지쳤겠습니까? 그러나, 그 병든 중에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위로하고 섬기고, 받들고 잔심부름까지 다 했습니다. 자기 목숨보다 사도 바울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피곤이 지나쳐서 병이 들고 죽을 지경이지만, 우선순위는 ‘주의 일’에 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병이 나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빌립보 교인들은 근심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은 ‘네가 건강을 회복됐으니 빌립보 교인들 눈앞에서 다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에게 에바브로디도를 ‘주 안에서 기쁨으로 맞아들이고, 아주 존귀한 사람으로 알고 영접하라’고 했습니다(빌 2:28-30).
2. 인생 역전을 맛본 사람입니다.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티테’에서 따온 것입니다.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속해 있는 당시 빌립보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섬겼던 여신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방 여신을 섬기는 이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바울을 만난 후로부터 살아 계시는 유일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가정이 뒤집어졌습니다. 이방 여신의 이름을 통해서 인생을 시작했던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만나서 신앙의 형제가 되고, 동역자가 되고, 십자가 복음 전선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의 아주 훌륭한 군사가 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그 누군가를 만남으로 우리 인격이 다시 한 번 형성됩니다. 그래서 인생 여정에서 누구를 만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인생 역전’은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이 함께하는 충성된 동역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영육 간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동지를 만나면 그 인생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3. 다섯 가지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의 이름의 뜻은 ‘매력 있는 자, 아담한 사람, 사명의 사람’입니다. 그 이름대로 다 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에바브로디도에게 다섯 가지의 별명을 주었습니다(빌 2:25). 첫째, 에바브로디도는 ‘나의 형제’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형제를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마 12:46-50, 눅 11:27-28). 여기 ‘나의’란 소유격 수식어는 우연히 붙여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마음도, 뜻도, 교회를 사랑하고 남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는 것도 하나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얻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얻었습니다. 참된 친구, 참된 형제입니다. 두 번째, ‘함께 수고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손발을 놓지 않고 일하는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형 당하게 되면 같이 사형 당할지도 모르는 죽음을 각오하고 받든 분입니다. 목숨을 걸고 한 용감한 수고입니다(빌 2:30). 또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를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늘 깨어서 교회의 아픈 부분을 기도해 주는 기도의 대장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위해서 항상 깨어 있는 자입니다(골 4:2-3, 고전 15:57, 히 11:6). 깨어 있는 자가 믿습니다. 깨어 있는 자가 교회를 사랑합니다. 깨어 있는 자가 교회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함께 군사 된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서 된 신령한 군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할 때 그대로 믿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에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좋은 군사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딤후 2:4). 에바브로디도는 생명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 교회를 지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빌립보 교회의 ‘사자, 대사’라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공신도가 아주 높은 사람입니다. ‘대사’라는 히브리어는 ‘변호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참 진실한 마음, 거짓이 없는 진리의 마음 가지고 변론할 때 사람들이 다 굴복합니다. 올바른 중보자, 변호사 같은 사람이 있을 때, 교회가 환해지고 덕을 쌓게 되고 신용이 있게 됩니다(요 14:26, 15:26). 마지막으로 ‘조력자, 조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무대가 화려하고 출연진이 훌륭하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언제나 주연으로 일하고, 나타날 때는 조연입니다. 공은 많이 세우되, 교회의 공으로 돌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기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는 말씀은, 단순히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바울과 함께하면서 헌신적이고 눈물겨운 수고, 복음을 위해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가운데 불평, 불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가가 있어야 일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일전 한 푼 받지 못하고 헌신, 봉사한 것입니다.
결 론 : 우리교회에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일꾼만 있다면 세계를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날마다 내 속에 짓눌리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고후 11:28). 그것은 고생이 아니라 삶에 아름다운 꽃이고 열매입니다. 열매가 맺히면 많은 사람이 따먹는 흐뭇한 복음을, 생명을 나눠 주는 것처럼, 에바브로디도 같은 성도가 되어서 교회를 위해서 늘 짓누르고 고통을 당하는 신앙의 성숙함으로 마음먹는 대로, 그 소원대로 되는 축복된 역사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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