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8
눅 19:41-44
[제24-26호]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눅 19:41-44
서 론: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예수를 친구 삼아 참된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찬송가 469장 4절의 내용입니다. 이 찬송가 가사는 참된 평화는 오직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1. 영적인 평화와 물리적인 평화
유대인들은 평화를 ‘샬롬’이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오는 평화”를 뜻합니다. 로마인들은 평화를 ‘팍스’라고 합니다. 그것은 “힘으로 세계를 정복했을 때 오는 승리감과 평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말하는 평화 ‘샬롬’은 영적이며 정신적인 평화인 데 비해, 로마인들이 말하는 평화 ‘팍스’는 힘으로 만드는 물리적인 평화를 뜻합니다. ‘피스’라는 영어 단어 역시 로마의 ‘팍스’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물리적이고 물량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같은 ‘평화’이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 뜻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평화공존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은 ‘힘으로 다스리는 평화’이지 ‘샬롬’은 아닙니다. 무기 제한 협정을 한다든지, 군비 축소를 의논한다든지, 군사력의 균형 등의 이론으로는 ‘샬롬’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고 있는 ‘샬롬’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1973년에 미 국무장관 키신저와 베트남 측 대표 레둑토(Le Duc Tho)는 평화협정을 맺은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맺은 평화협정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주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샬롬’은 정치협상 테이블이나 교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겉으로 볼 때는 모두가 안정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생활에 들어가 보면 모두가 문제가 있고, 고민이 있고, 편치 못한 처지에 있습니다. 즉, 로마인의 ‘팍스’는 있어도 유대인들의 평화인 ‘샬롬’은 없습니다.
2. 병든 평화와 진정한 평화
이 땅에는 병든 평화와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이를 우리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예루살렘의 도성을 보시고 우셨고, 나사로의 죽음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 때문에 우신 것은 ‘인정에 얽힌 눈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눈물은 ‘영적이며 종교적인 눈물’입니다. 예루살렘성 때문에 우신 것은 ‘애국애족의 눈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에 잠긴 아름다운 도성이었지만, 우리 주님이 바라보신 예루살렘은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기는 했지만 예수님은 병든 평화를 보셨고, 시민들은 병든 평화를 영원하고 건강한 평화로 착각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워 주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자신들의 도시가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병들었다는 것은 그 성안에 사는 백성들이 병들었다는 것이고, 우리 시대가 병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병들었기 때문이며, 교회가 썩고 병들었다는 것은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썩고 병들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성은 로마의 디도 장군이 이끄는 점령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보다 70년 전에 예수님이 이 멸망의 광경을 보시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우시는 울음을 여러분들은 보고 있습니까?
3. 병든 평화를 버리고 참평화를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병든 평화로 깔린 살얼음 위에 살고 있습니다. 가정이 그렇고, 사업체가 그렇습니다. 이 나라 백성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소돔, 고모라는 옛날얘기입니다. 소돔, 고모라보다 수백 배의 죄악이 한국의 도성에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도덕성이 타락하고 남녀관계, 성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피차에 불신시기질투미움과 이기심만이 남아 있습니다.
눅 19:28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기사가 나옵니다. 평화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예수께서 평화의 왕으로 들어가시는 행진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시민들은 예수가 가지고 입성하는 평화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졌을 뿐,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병든 평화를 버리고 진정한 평화를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신구약성경,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랑하는 가운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며, 우리의 원수 마귀인 사단을 이깁니다. 평화의 왕 되신 예수님을 모시게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 건강한 평화를 누리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결 론: 요 14:27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참된 평화, 주님의 영원한 위로와 사랑과 참된 평화가 깃들어 있는 ‘샬롬’을 모두 다 선물로 받아 가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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