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19
★ 빌라델비아(Philadelphia) : 형제 우애
빌라델비아는 계시록 기록 당시 소아시아 서편 루디아에 있던 성읍으로(계1:11) 로마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으며 오늘날은‘알라셰히르’로 불리고 있다. 이 도시는 주전 150년경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왕 아탈로스 2세(필라델포스)에 의해 건설돼 주전 130년경 로마에 귀속됐다. 지명 또한 아탈로스 2세의 이름‘필라델포스’에서 유래한다.
주후 17년 대지진이 있은 후 계속된 지진으로 초대교회가 있었던 빌라델비아는 땅 속에 묻혀 버렸으며 현재의 교회 유적은 비잔틴 시대에 지어졌던 교회 잔재 중 거대한 두 기둥뿐이다. 기와 두께만한 얇은 벽돌과 돌을 섞어 쌓아 올린 기둥은 그 둘레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m, 3m, 15m 정도의 크기로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의 웅장했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비교적 높은 4개의 도움으로 구성된 이 교회의 벽에는 11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있으나 그나마도 점차 마모되어가고 있어 방문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빌라델비아는 포도 재배의 중심지이며 유명한 포도주 생산지로서 라오디게아에서 빌라델비아에 이르는 길은 수십km의 긴 포도밭이 계속된다. 그래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 신(神)을 숭배했던 고장이기도 하다. 다른 도시들처럼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부유하지는 않았으나 소아시아 내의 교회에서 쓰는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
주전 1세기경 ‘밀의교(密儀敎)'의 규정이 기록된 대리석이 출토됐는데 이것으로 볼 때 빌라델비아는 원래 고대 이교(異敎)가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시의 종교적 풍토 속에서 기독교도들이 칭찬을 받았으니 그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빌라델비아는 아랍인들의 침략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있었던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였다.
(계3:7~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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