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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는 피신 장면을 그렸지만 크라나흐는 성가족이 피신 중에 잠시 숨을 돌리고 발을 쉬는 휴식 장면을 그렸다. 그림 주제가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의 휴식>으로 바뀌었다. 꿈속의 천사는 왜 피신처를 멀리 이집트로 잡았을까? 창세기 42장에 기근을 견디다 못한 야곱이 자식들을 이집트로 보내어 식량을 구하도록 한 이야기,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와 카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죽음의 추적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예레미야 26장과 43장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구약 시대에는 이집트를 안전한 피신처로 보았던 모양이다.


인적 없는 산중에서 성가족이 행낭을 풀었다. 먼동이 파랗게 밝아 온다. 마리아를 태우고 밤길을 걸어왔던 나귀는 보이지 않는다. 성가족은 천사들이 시중을 받으며 초장에 자리잡았다. 마리아가 강보를 풀어서 아기 예수를 들어 보이고, 요셉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모자를 가슴에 댔다. 한 천사의 피리 연주에 맞추어 다른 천사가 노래한다. 천사들의 정성어린 시중에 불안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또 다른 천사는 아기 예수에게 산딸기 한 웅큼을 꺾어 바친다. 크라나흐는 산딸기가 천국 정원의 열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림 왼쪽 가장자리에서 아기 천사가 샘물을 두 손으로 받아 든다. 새를 붉은 실에 묶어서 잡아오는 천사도 있다. 그림 왼쪽 귀퉁이에는 가시 엉겅퀴가 피어 있다. 모두 예수의 수난을 암시한다.
바위에서 샘물이 터져나온다. 이집트 피신길에서 일어났던 또 다른 기적이다. 착한 종려나무와 작별 인사를 나누기 전이었다.

위 마태오 경전은 아기 예수가 종려 나무 자락에서 맑고 시원하고 광채가 환히 비치는 샘이 솟아나게 했다고 기록한다. 한편, 아라비아 경전 제 4장에서는 기적의 샘터 장소가 다름 아닌 '마타레'였고, 샘물을 본 마리아는 아기 옷을 한 소쿠리 빨았다고 한다. 태양신'레'가 매일 얼굴을 씻고 광채가 시들지 않게 했다는 샘터 이름도 마타레였던 것은 신기한 일치이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앉은 곳에서 들꽃이 무리 지어 피어난다. 맑은 샘물이 이들의 발치를 휘감아 흐른다. 요셉은 그림 밖의 보는 이를 쳐다보며 공손하고 경건한 자세를 요구한다. 크라나흐는 북구의 신비로운 산림 풍경과 성서의 기적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두었다. 이집트로 가는 피난길에 화가의 상상력을 쏟아서 조그마한 천국 정원을 꾸며 놓았다. 천사들의 고운 연주 못지않게 성가족에게 기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 류카스 크라나흐,<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의 휴식>, 1504년,70.7x53cm,달렘 미술관,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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