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4
티치아노는 막달레나의 모습을 야릇하게 재현한다. 높은 곳을 향한 눈동자, 올려젖힌 머리, 먼 데를 지향하는 종교적 열정은 만테냐의 성모 승천이나 페루지노의성 세바스티아누스에서 이미 파토스의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성녀의 얼굴에 충혈된 눈동자와 반짝이는 눈물이 없었더라면 흡사 살꽃 파는 거리의 여인으로 오해받기 쉬웠을 것이다.
▶ 티치아노,<막달레나>, 84x69cm,1533~1535년, 피티 미술관, 피렌체
가슴을 풀어헤친 성녀를 두고 달갑지 않은 심기를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 부르카르트는 '머리카락이 금빛 파도처럼 쏟아져 내리는 매혹적인 여인을 가지고 참회하는 성녀라니 가히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하고,티이체는 '종교적 감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고단정했다.
카발카셀레와 크로우는 '꽃의 여신 플로라를 그려 놓고 깜박 제목을 실수한 게 아닌지', 그리고 왠지 '마음을 마구 산란하게 하는' 여인이라고 짐짓 딴청을 부리기도 했다.
뭐든 비교하기 좋아하는 뵐플린이 '황폐 한 육신을 그러잡고 후회에 몸부림친다기보다는 남자를 대번에 요절낼 달콤한 타락녀'라고 본 것이다, 매사에 근엄한 러스킨이 '한마디로 역겹다'고 내뱉은 건 그림의 유혹에 만만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굳은 심경의 일단이지만, 콜레가 '어지럼증이 핑글 돌 만큼 가슴을 휘젓는 여인'이라고 실토하고, 팔루키니가 한 술 더 떠서 '손에 물컹 잡힐 듯 실감나는 관능'에 대해서 입이 마르게 찬사를 늘어놓은 것은 그림의 최면에 반갑게 말려들었다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티치아노는 굳이 성녀의 옷을 벗겨서 알몸을 만들었다. 거추장스런 옷자락으로 관능을 은닉하는 대신, 거침없는 알몸으로 참회의 진실을 드러낸다. 옷자락으로 관능을 은닉하는 대신, 거침없는 알몸으로 참회의 진실을 드러낸다. 화가가 광야의 성녀에게 육정의 향기와 참회의 눈물을 함께 버무려 둔 것은 무슨 심사 일까.
화가의 친구 카스틸리오네는<궁정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정은 패덕의 가책을 누그러뜨린다. 부정을 의식하는 행위는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순결은 미덕의 기쁨을 덜어 낸다. 욕망의 가책없는 순결이란 없기 때문이다.
.......패덕과 미덕은 상대성의 사슬로 묶여 있다. 그러므로 패덕이 경감하면 미덕도 가벼워진다.'
후기 르네상스에도 식지 않은 신플라톤주의는 반복하는 가치가 빚어 내는 상반성의 조화로운 변증법에 기대었다. 패덕을 통해서 미덕을 발혈한다는 논리는 '더 큰 빚을 진 이가 더 많이 탕감받는다'는 사랑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두 해 앞서 폼포나치는 <영혼 불멸에 관하여>에서 '미덕은 궁극적으로 자기 위안이며, 패덕은 본질적으로 자기 반성이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기독 신학과 이교 철학의 두 진리를 섬겼던 이중 가치의 시대를 살았던 인문학자들처럼 화가도 신앙과 이성의 긴박한 관계에 소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티치아노는 1560년 이후 새로운 막달레나를 선보인다. 성녀는 벗어 두었던 옷가지를 다시 챙겨입었다. 이전의 막달레나와 똑같은 표정,외모,자세,그리고 역동적인 반측면 시점이 뒤풀이되었다. 육욕을 증거하던 알몸을 옷으로 덮어 가린것은 종교재판소의 위엄 때문이다.
1563년 12월4일에 공포된 칙령대로'그림을 종교적 용도에 사용하는 일에서 일체의 미신을 배격하고, 더러운 돈벌이를 삼가고, 마침내 타락을 모조리 쓸어내며, 이와 같이 육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려서도 걸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결정에 반대되는 설교를 하거나 행여 거기에 동조하는 자는 파문에 처한다.'는 으름장이 단단히 먹혀들었다.
티치아노뿐 아니었다. 참회하는 마르다를 본받아서 화가들이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1564년 질리오가<화가들의 그릇된 습관과 관행..>에서 '성자와 성녀를 벌거벗겨서 기쁨을 삼은 행위'를 질타하고, 1582년 암마티는 '지금껏 붓으로 방자하게 그린 알몸의 인물들이 젊은 날의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었다고 고백했다.
화가의 예술적 상상력보다는 교회의 정책적 공익이 우선한다는 원칙이 확인된 셈이다. 한 걸음 나아가 1584년 로마초는 '기독교회 안에서 알몸을 재현하는 미술이 용인되는 일은 있을 수없다. ....
특히 막달레나를 그릴 때에는 기도를 위해 들어올린 두 팔로 가릴 곳을 가리고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적절히 흩어 놓는등, 성녀의 알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젊은 기독 성녀들은 적어도 17세기 초엽까지 옷깃을 단단히 여미어야 했다.
▶ 티치아노,<막달레나>, 128x103cm,1560~1567년,
카포 디 몬테 미술관,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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