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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성자 세바스티아누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대장으로 총애를 받았으나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기독 신앙을 지킨 탓에 순교를 당했다. 영문을 몰랐던 황제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항상 그대를 왕궁의 첫째 자리에 두었는데, 그대는 오히려 나를 반역하고 제신들을 섬기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세바스티아누스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항상 황제 폐하를 위해서 기독교를 믿었고, 로마 제국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노여움을 누르지 못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세바스티아누스를 들판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매달아서 화살을 쏘아 죽이게 했다.
궁수들이 쏜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가 된 세바스티아누스는 신기하게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몸이 회복되자 궁성으로 찾아가서 황제에게 기독교박해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알려 주었다. 황제는 죽음에서 되살아난 세바스티아누스를 곤봉으로 쳐죽이고서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초기 카타콤 미술에서부터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성자다. 중세에는 십자가 군병의 수호 성자로, 1350년 무렵 이후에는 페스트 성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몸에 박혔던 화살 자국이 페스트의 열꽃이 남긴 흉터와 비슷하게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15세기 이후 갑자기 옷을 벗어던진 성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간단한 홑천 하나만 걸치고 등장한다.

수염없는 미끈한 젊은이로 변신한 것도 이시기부터다. 순교자의 표정에서 고통의 흔적을 씻어 낸 것은 페루지노의 서정이다. 이와 더불어 육감적으로 뒤틀린 나신의 관능이 인체 비례의 과학을 벗어 나기 시작한다. 페루지노나 프라 바르톨로메오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보고 고해성사를 하러 온여인네 들의 마음속에 야릇한 심사가 피어올랐다는 기록이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바사리는 한 술 더떠서 여인네들의 마음이 더이상 동요하는 일이 없도록 교회 제단에서 그림을 떼어 냈다고 전한다.

안토넬로는 순교성자를 궁정의 안뜰로 옮겨 놓았다. '들판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매달아서'화살로 쏘아 죽이게 했다는 기록에서 비켜선 것은 화가의 상상력이다. 화면 깊숙이 파고드는 시선 거리와 낮게 책정된 재현 시점이 순교자의 영웅적 자세를 뒷받침한다. 쓰러진 돌기둥은 황제의 권위에 기댄 기독교의 박해가 소용없음을 의미하지만, 기하학에 근거한 원근법적 재현의 자랑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청년의 도상으로 변신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이른 사례이다.

▶ 안토넬로 다 메시나,<성 세바스티아누스>, 1476년 무렵, 171x85cm,국립 미술관, 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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