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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11.08
717년 보니파키우스는 윌리브로드를 따라서 일에 착수 하였다. 윌리브로드가 이룩해 놓은 일 가운데 대 다수는 이교도 공작 레드보드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보니파키우스는 윌리브로드의 도움을 받아 프리슬란트에 기독교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였다. 수년후 보니파키우스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로부터 새로운 선교 사명을 받고 이교도의 땅 게르만으로 갔다. 723년 그레고리우스 2세는 그를 주교로 임명하였고, 그가 주교나 사제들을 임명하여 새로운 교구를 만들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보니파키우스는 헤세의 가이스마르(서부 독일 지역)에서 용감한 행동을 해서 유명해졌다. 그곳 공동체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토르(천둥번개의 신/역사 주)의 지성소라고 생각해서 예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나무를 불경스럽게 대하면 토르가 벌을 내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보니파키우스는 이 커다란 나무를 베어 버렸고, 그런데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그들의 신보다 더 강하다고 했던 보니파키우스의 설교가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보니파키우스는 그 벤 나무로 예배당을 지어서 성 베드로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그는 독일에 수도원들을 계속 지어 나갔다. 그중에 풀다 수도원은 오늘날까지 중부 독일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장소이다.
보니파키우스는 독일의 대주교이자 교황의 사절로서 선교 영역을 넓혀 갔으며, 개종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규칙들을 제정하였다. '주기도문'을 바칠 때나 신조를 고백하고 설교를 할때, 그리고 몇몇 복음서의 구절을 읽을 때에는 독일어를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세례 예식은 라틴어로 치러야 했다.
보니파키우스와 그를 따르는 선교자들은 이교도들에게 기독교적 삶의 양식을 가르치자 하였다. 그들은 악과 선을 구별하는 일, 최후의 심판,금식의 필요성,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일에 대해 가르쳤다.
보니파키우스는 754년, 오늘날의 네덜란드 지역을 여행하다가 비 기독교인들에게 갑작스레 난폭한 죽음을 당함으로써 선교 활동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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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만인들의 사도, 보니파키우스
11세기의 미사용 책에 들어 있는 이 그림은 보니파키우스의 선교 활동과 순교를 그리고 있다. 그의 전기를 쓴 사람에 의하면 보니파키우스는 복음서를 자신의 방패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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