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0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에 앉는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연결되어야 구원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3명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살펴보자.
1. 삭개오 / 눅 19:2
(1) 처음 보는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눅 19:5)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고(마 5:4), 삭개오가 애통하는 자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눅 19:2).
(2) 애통하는 자의 삶
세를 걷어 로마에 바치는 세리장 삭개오는 동족으로부터 비난과 따돌림을 당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것 같았지만 손가락질 받는 인생으로 애통의 삶을 살았다.
눅 18:13,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에 등장하는 세리는 차마 하늘을 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였고,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마음을 아시고 이름을 불러주시며 큰 위로를 행하여 주신 것이다(눅 18:13).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고백하는 애통의 삶(렘 17:10)을 살면 내 옆에 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시며 큰 위로를 하여주신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이와 나누겠다는 삭개오의 고백(눅 19:8)은 부요한 삶에 대한 집착이 없음을 알 수있다. 삭개오가 큰 부자였음에도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은 이유는 이 땅에서 애통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데, 애통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씀해주시고 위로해주신다.
2. 로마의 한 백부장 / 마 8:5-6
집안의 청지기이자 노예였던 자신의 하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리어 긍휼히 여김을 받은 백부장처럼, 예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실 때 나의 모든 소원이 이뤄짐을 알 수 있다(마 8:8).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곧 예수의 마음이다.
(1) 나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는 태도(마 8:8)
(2) 예수님에 대한 절대 신뢰(마 8:8)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백부장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함으로써 아브라함과 연결시키고 있다(마 8:11).
3. 거지 나사로 / 눅 16:20
이름의 뜻을 볼 때,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뜻으로 믿지 않았던 부자와 달리 아버지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심령이 가난한 자였다. 원어로 볼 때, 절대빈곤으로 고통 받아 웅크린 사람(고전 9:9)이라는 뜻으로 이 땅에 미련과 소망을 두지 않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의 손길을 바라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 날마다 눈물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 하시고(시 9:10) 아버지께서 끝까지 돌보시는 복된 인생이다. 결국 아브라함 품 속의 성도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빠져 나올 수 없으며 반드시 건져주신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와 백부장,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과 연결시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빠짐없이 아브라함과 연결되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의 행사를 행하여 큰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위해 소중히 쓰임 받는 평강의 성도 모두가 되시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경건한 자손’, 한 사람을 찾아(말 2:15) 그를 통해 경건한 가족과 민족을 만들어 온 열방을 구원하고자 행하신 역사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아담 이후 아브라함까지 20대의 족보를 통해 아브라함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구속사의 기초를 쌓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 노아의 세 아들들과 믿음의 계승(창 9:18-27)
*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벌거벗고 잘 때 그의 세 아들이 보인 행동과 이들에게 주어진 결과는 무엇인가?
1) 함 - 아비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고함(창 9:22)
2) 셈과 야벳 - 옷을 취하여 뒷걸음쳐 들어가 아비의 하체를 덮음(창 9:23)
3) 결과
① 함에게는 그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여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된다고 함(창 9:25, 27)
②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함(창 9:26)
③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심(창 9:27)
2. 데라의 세 아들들
1) 하란 -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아들(창 11:27-28)
(1)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
(2) 죽은 장소 : 본토 갈대아 우르
(3) 하란이 단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 악하고 무매한 삶을 살았기 때문(시 55:23, 잠 10:27, 전 7:17)
(4) 하란의 가정에 주신 기회
① 딸 밀가
② 아들 롯
2) 아브라함과 나홀
(1)나홀 - 밀가
① 여덟 명의 아들들을 낳음(창 22:20-23)
②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음 창 24:10 -> 후에 하란으로 이주하여 정착
③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성공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성을 건축하고 세상적 풍요와 번성을 누린 아들
(2)아브라함 - 사래
① 결혼하였으나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녀가 없었다(창 11:30).
② 이처럼 아브라함은 결혼을 하였으나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여 자녀가 없었다.
3. 데라 이후의 언약의 계승과 아브라함의 신앙
1) 데라의 지체함과 죽음
(1) 데라가 주도함(행 7:2-3)
데라가 손자 롯과 아브라함-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남.
(2) 아비 집을 떠나라
하란에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고향과 친척뿐 아니라 ‘아비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심(창 12:1)
(3)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창 12:5)
(4) 데라의 삶에 대한 요약 : “데라는 죽었더라”
2) 하란의 가정 : 밀가, 이스가, 롯
(1) 밀가 : 밀가는 하란의 동생 나홀과 결혼함. 그러나 나홀은 메소보다미아(갈대아 우르)에 정착하여 세상적 성공과 번영을 이룸
(2) 롯 : 아버지 하란을 대신하여 언약의 대표주자로 가나안 땅을 향해서 출발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음. 롯의 실패의 이유는?
① 감사와 희생이 없음(창 12:7, 8, 13:18)
② 스스로 눈을 들어 요단동편 들을 선택하여 떠났다가 소돔 성에 정착(창 13:10)
③ 소돔 사람들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
④ 소돔에 대한 심판과 롯의 가정의 멸망(창 14:11), 소돔 성 멸망 이후 두 딸을 통해 모압과 벤암미를 낳음으로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저주를 받음(창 19:36-38, 신 23:3)
3) 나홀의 가정 : 갈대아 우르에 머물며 8명의 아들을 낳고 번성하였다.
(1) 브두엘의 자녀 : 리브가와 라반(창 24:15, 29)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함으로써 ‘천만인의 어미’가 되는 축복을 받음(창 24:60)
(2) 라반의 자녀 : 레아와 라헬(창 29:16)
레아와 라헬이 야곱과 결혼함으로써 나홀의 가정은 아브라함 집안과 관련을 맺음
4) 아브라함의 가정
(1) 감사와 예배의 삶
가는 곳마다 단을 쌓는 감사와 예배의 삶을 살았다(창 12:7, 8, 13:18 - 세겜, 벧엘과 아이 사이, 헤브론)
(2) 연약함 - 실수와 실패
① 애굽에 내려감(창 12:10)
② 아내를 누이라 함(창 12:17)
③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음(창 16:2)
④ 이러한 아브라함의 실수와 실패를 회복시키기 위해 할례언약을 명하시고, 아브라함과 사래의 이름을 개명하여 주심(창 17장)
⑤ 결과적으로 모리아의 한 산에서 아들 독자 이삭을 바침으로 하나님께 그 믿음을 인정받음(창 22:12)
결 론 - 오직 믿음, 오직 은혜
1) 데라의 세 아들들은 노아의 세 아들들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였다.
① 함과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은 것처럼 데라의 큰 아들 하란의 경우는 아비보다 먼저 죽고, 그 아들 롯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음에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② 아브라함의 경우는 셈과 야벳의 경우처럼 아브라함이 언약을 계승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③ 나홀은 리브가나 라헬 등 자기 후손들을 통해 아브라함의 장막에 거하며 창대케 하는 축복을 받았다.
2) 아브라함의 축복과 믿음의 비결은 자신의 의와 공로로 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품은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눅 16:22)?
1. 아브라함 품의 의미
(1) 낙원을 가리킨다.
부자는 음부로 갔는데,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품’이 음부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 것으로, 음부의 반대개념은 낙원인 것이다(눅 16:22-23).
①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다(전 12:7,행 7:59).
② 믿는 사람의 죽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죽음의 결과는 다르다.
성경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그 영혼이 낙원(천국)에 간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는 그 영혼이 음부(지옥)로 간다고 말씀하고 있다(눅 23:43, 행 2:27).
(2) 영원한 복락과 사랑을 나타낸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는 것은, 나사로가 영원한 복락과 사랑속에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① 품은 영원한 복락의 의미이다(잠 5:19, 사 40:11, 사 66:11).
② 품은 영원한 사랑의 의미이다(요 21:20, 요 13:25).
(3) 영적인 부모와 자식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한다(욥 24:9, 민 11:12).
① 예수님도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셨다(요 1:18).
②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된다(갈 3:7, 29).
③ 영적 부자관계가 성립되었을 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눅 19:9).
2. 아브라함 자손의 올바른 모습
(1)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눅 3:8, 19:8).
(2)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여야 한다(요 8:39).
아브라함의 진정한 행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거하는 것이다(요 8:37).
(요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여기 너희 아버지는 마귀를 가리킨다(요 8:44).
내 아버지에게서 | 너희 아비에게서 |
파라 + 여격 = ~곁에 | 파라 + 소유격 = ~로부터 |
내 아버지 곁에서(가까이,친밀한관계) | 너희 아버지로부터(떨어져있음) |
(3)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갈 3:7, 29).
여기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는 헬라어 ‘크리스투’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것(소유)’라는 뜻이다(고전 6:19-20).
결론적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이것은 나의 관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 | 부자 |
아브라함의 품(영적인 부자관계) |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눅 16:24, 27, 30) |
예수님의 관점 | 자기의 관점 |
부자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자기의 관점이었고,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으신 것이다(눅 16:24, 27, 30, 31).
(마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 13: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므로, 구속사의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를 때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롬 10:17, 창 17:5).
구성 에메트인터넷선교회
사진 에메트인터넷선교회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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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유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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