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절구통
2019.03.04
민 11:7-8, 히 5:12-14
제 19-9호
고난의 절구통
민 11:7-8, 히 5:12-14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 길을 갈 때 하나님은 만나로 그들의 식량을 책임지셨습니다. 만나는 홍해를 건너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내렸습니다(출 16:1,13-15).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 진을 치고 유월절 이튿날 그 땅 소산을 먹던 날까지 40년 동안 내렸습니다(수 5:10-12).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거둬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며,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맛이 꿀 섞은 과자 맛 같았습니다(출 16:31).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영원한 생명의 만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요 6:31-35). 그러므로 맷돌에 갈리고, 절구통에 찧어진 만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내다보게 합니다.
1.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으로서,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산 떡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요 6:49-50). 주님은 깨지지 않는 만나처럼 덩어리째 말씀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장성하지 못하고, 귀가 열리지 못하고, 눈이 뜨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가 누구의 아들이냐”고 하면서 믿지 못했습니다(눅 4:22, 요 3:12).
그래서 주님은 인류의 속죄주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절구에 들어가 깨지고, 부서지고, 바숴져 가루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만나는 이러한 주님의 고난을 예표로 미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희생의 제물 되기 위해 부서져 가루가 되다시피 하여 우리에게 영생의 양식인 만나를 먹였습니다. 생명의 구주가 절구통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절구통은 만나로 초림하셔서 당하신 온 인류가 헤아리려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육체적, 외부적 고난과 고통, 괴로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고난의 절구통에서 무릎, 손마디마디가 부서지고 깨어지고, 속살이 드러나는 고통 가운데도 깨어지면서도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옷 벗김의 수치를 당했습니다. 주님께 홍포를 입혀, 노리개 삼아 조롱하고 희롱했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씌워 무시했습니다. 생명이 무시당하고, 생각이 무시당하는 순간입니다.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그 피가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웠습니다. 개만큼도 취급하지 않고, 주님의 인격까지 짓밟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무시당하는 순간입니다. 고난의 절구통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주님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밟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 가치를 완전히 짓밟고 있습니다.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등에 채찍을 가하고 수염을 붙잡아 흔들고 뺨을 때렸습니다. 그렇게 절구통에 들어가서 우리들 때문에 고난당하는 모습을 알 때, 주님 위해서 살려고 애쓰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너 위해 절구통에 들어가서 바숴지고 껍질 벗겨지고 했는데, 너는 나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질문을 하십니다(찬 144장).
2. 성도가 겪어야 할 고난을 보여 줍니다.
만나가 절구통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가 겪어야 할 고난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죽인 것을 항상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속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고후 4:10-11).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행 14:22). 주님을 위해서 욕먹고, 상대방이 이해 못할 때 분하기 짝이 없지만,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바로 여러분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벧전 4:14). ‘환난’(헬, 들립시스)이란 원어적으로 볼 때 무거운 물체가 내리쳐 형제가 다 부서지고 깨어져 사방에 흩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이름 때문에, 교회 때문에 아주 인격이 부서지고 깨지고, 내 이름 석 자가 존재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시당하는 환란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얼마나 환난을 당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를 증거하다가 돌로 침을 당했는데 죽은 줄 알고 밖에 버렸습니다(행 14:19-20). 주의 제자들도 주와 함께 그렇게 깨지고 부서졌습니다.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에게 주후 44년에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했습니다(행 12:1-2).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몰매를 맞아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주후 64년에 로마에서 채찍과 함께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서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인도에서 혹독하게 매를 맞은 후 아르메니아에서 물에 던져져 순교했습니다. 유다 곧 다대오는 수리아 지역에서 십자가에 순교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애굽에서 순교하였고, 가나안인 시몬은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에서 처참하게 십자가형으로 순교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고난의 절구통에 들어가서 모두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환난이나 핍박, 위험이나 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습니다(롬 8:35-39).
결 론 : 초림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만나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알지 못하고 절구통에 찧으므로 다시는 만나를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골 1:24의 말씀처럼 주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채워 나가야 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그 이유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고난의 절구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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