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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 입은 천사가 금빛 옥좌에 앉은 마리에게 성령 잉태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날개를 미처 접지 못한 천사의 발이 대리석 바닥에 소리 없이 미끄러진다.

천사와 마리아의 후광은 아직 평면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화면의 배경면과 평행을 이루는 평면 후광은 6세기 이후의 미술의 전통이다. 성령의 비둘기가 빛무리와 함께 마리아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천사는 왼발을 내밀고 허리를 구부려서 한 걸음 '다가서는' 자세를 취한다. 이 자세는 전령으로서 천사의 역할을 선명히 드러낼 뿐 아니라 사건의 긴박성을 더해준다.

더군다나 3/4 프로필의 옆모습으로 천사의 자세를 풀어 설명하기에 적당해서 화가들이 자주 애용했다. 마리아도 보는 이를 향해서 비스듬히 상체를 돌리고 무릎을 살풋 벌린 '서사적'자세를 취했다.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한 장소는 바람이 시원하게 통하는 고대풍의 로지아. 둥근 기둥과 무지개 아치가 황금 궁성처럼 빛난다.

중앙 뒤쪽에 붉은 휘장이 늘어진 처녀의 침실이 숨어 있다. 수태고지는 꽃들이 피어나는 봄 마당에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15세기 수사 프라 로베르토 카라치올로는 마리아의 응답이 순종과 온순의 미덕을 나타낸다고 설교했다. '나는 여왕이다' 또는 '숙녀다'라고 내세우지 않고, '이 몸은 주님의 종'이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었다는 것이다.

천사 뒤쪽으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내쫓긴다. 창세기의 저주는 제단화의 전면에서 멀찌감치 밀려나서 상징적 크기로 줄어들었다. 마리아를 찾은 천사는 그들이 저지른 원죄의 속박에서 인류를 풀어 내실 구원주의 탄생을 예고한다. 마당 경계에 박아 둔 희미한 울타리가 까마득한 옛적에 일어났던 추방 사건과 수태고지를 격리 시킨다.

▶ 프라 안젤리코,<수태고지>,1438년 무렵, 175X180cm,주교구 박물관, 코르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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