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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6

아브라함의 손이 칼을 놓쳤다. 손끝을 떠나서 낙하하는 칼이 허공에 얼어붙었다. 칼날 가장자리에 이삭얼어붙은 살갗이 노란빛으로 어리었다. 칼을 떨구었으니 이삭의 목이 달아날 염려도 없어졌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장작더미에 누운 소년은 구원의 낌새를 알지 못한다.

칼날이 땅을 치기 전 짧은 정적의 순간이 목을 빼고 누운 이삭에게는 다시없을 영원처럼 아득했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배경과 주변 소재들을 어둠속에 밀어두었다. 그러나 공간을 모두 지워 버린 것은 아니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배경을 대신해서 공간을 직조한다. 평면에서 확장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배역들이 주고받는 행동과 반사 행동의 논리다.

이삭과 아브라함과 천사는 세 축으로 달리는 인물 구성의 뼈대를 구성한다. 매화 뿌리에서 줄기가, 줄기에서 다시 가지가 뻗어 나는 것처럼, 누운 이삭의 동세에서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의 동세에서 다시 천사의 몸뚱이가 이어진다. 이삭과 천사 사이를 잇는 아브라함은 중간 고리답게 허리를 접고 비틀었다.

이삭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촉지적이라면 아브라함과 천사의 관계는 시각적이다.
렘브란트는 숫양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나귀도, 하인들도 빼 두었다. 이삭의 눈꺼풀 위에 배반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죽음의 빛깔을 빌려서 그림 구석구석 어두운 그늘을 드리워 두었다.

이삭은 알몸이다. 어둠 속에서 이삭이 밝게 빛난다. 그의 몸을 훓어내리는 빛은 칼날의 번득임보다 차갑다. 두 팔을 결박당한 이삭은 두다리를 잔뜩 오므렸다. 독수리 발톱 같은 아버지의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을 감싸 누르는 순간 오금이 졸아붙었을 것이다. <독수리에게 붇들려 가는 가니메데스> 처럼 오줌을 질금거렸을지도 모르겠다.

▶ 렘브란트,<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635년,193.5x132.8cm,에르미타주,페터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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