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5
1649년 구에르치노는 주문자에게 보낸 계약서에서 '수산나의 반신상과 두 노인의 머리'를 그리겠다고 적어 두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착수금을 받았으니 화가의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수산나가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흰 천으로 허리를 감싼 여인의 상체가 프락시텔레스의 대리석처럼 눈부시다. 화가는 수산나의 두 가지 덕목을 기억했다.
수산나의 두 가지 유형 가운데 '순결한 수산나'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노인들을 뿌리치며 저항하거나 벗어 둔 옷 가지를 끌어안으면서 거부 의사를 드러낸다면, '경건한 수산나'는 노인들이 공세에 아랑곳 없이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자세를 취한다.
구에르치노의 수산나는 '경건한' 유형의 전형이다. 참회하는 막달레나처럼 하늘을 우러러보는 여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순결의 덕목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각오가 반짝인다. 구에르치노는 라파엘로가 그린 <성 체칠리아>를 보고 수산나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정오의 하늘이 파랗게 빛난다. '몹시 더운 어느 날', 노인들은 여러 겹의 옷을 껴 입었다. 위선의 옷이다. 노란색 옷을 걸친 터번은 음란한 눈길로 알몸을 쓰다듬는다. 자주색 옷을 걸친 대머리는 수산나를 어르고 회유한다. 그의 왼손은 '같이 잡시다', 그의 오른손은 '만일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면 젊은 사내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 하겠소'라는 뜻이다. 인물과 색채 구성의 고전성도 라파엘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산나의 단호하게 쳐든 왼손은 제안에 대한 거부를, 오른손은 정절의 수호를 의미한다.
▶ 구에르치노,<수산나의 목욕>, 1649~1650년, 132.5x180cm,국립 미술관,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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