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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3.13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난히 예쁜 얼굴 때문에 마을에서 유명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듯 아역배우를 쏙 빼닮은 눈매와 흰 피부와 곱슬머리에 어울리는 다소 새침한 태도 때문에 누구나 아이를 만져보고 싶어 했고 한 번쯤 품에 안아보고 싶어 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애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진 것 자체가 너무 신비로웠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그 커다란 눈망울, 사람이 저렇게 예쁘게 타고날 수도 있구나.
그 시절 친구네 부모님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특용작물로 ‘오이’를 재배했고 수익성이 좋았다. 겨울이면 오이 수확이 끝난 비닐하우스의 폐비닐을 벗기는 작업을 했는데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을 위해 큼직한 드럼통에 폐비닐을 넣고 태워 난로를 대신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시골의 겨울 풍경이었다. 오이 재배로 농한기를 든든히 날 수 있는 젊은 농부들의 손길은 한껏 여유가 있었고 아이들은 그 주위에서 연도 날리고 썰매도 타고 불놀이도 했다. 그런 풍경 가운데 아이의 불길한 운명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사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난로처럼 쬐던 드럼통 속을 사남매 중 누군가 불꽃을 피우려고 막대기로 들쑤셨다고 했다. 그 바람에 불똥이 아이의 옷에 튀었는데 아이가 화염에 휩싸인 건 순식간이었다고 했다. 들리는 말은 그게 다였다.
아이가 그렇게 되고 친구네는 이듬해 봄, 마을을 떠났다. 빈 집은 꽤 오랫동안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 폐비닐이 벗겨지다 만 철골만 앙상하게 그날을 기억하는지 쓸쓸하게 남았다. 그 해 겨울방학 동안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죽음’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이의 눈망울, 웃음소리, 작은 손은 어디로 간 걸까. 살아서 뛰어놀고 사랑을 받았던 몸은 하루아침에 주검이 되었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남은 가족의 슬픔은? 엄마는 그런 걸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말라며 근심을 하셨고 또 다른 사람들은 표면적인 이야기만 했다. 어린 내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건 어떤 순리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며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였다. 어린 나에겐 꽤 큰 지진이었던 셈이다.
슬픔은 그랬다. 언제 어디서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생의 골목골목에서 잠복해 있다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인간으로 사는 이상 누구나 끝없이 겪어야 하는 삶의 전쟁에 어느 순간 객관적 관점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를 내려놓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만의 문제, 숙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는데 사람에게는 답이 없었다. ‘죽음’에 대한 첫 경험에서 파생된 슬픔이 은혜의 빛을 따라 평강제일교회 말씀 앞으로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겨 삶의 전폭적인 기준을 삼게 했을 것이다. 연약한 인간, 치명적인 약점들, 사람으로는 아무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 죄와 죽음에 관한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필연적인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산다는 것은 분명 개인의 몫은 아닌 듯하다. 믿음의 부여는 철저하게 그 주권을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믿음을 받아 지금 말씀 안에 함께 하는 우리 모두는 ‘큰 슬픔’의 풍랑을 겪고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서로 눈빛만 부딪쳐도 애틋하고 기운 없는 어깨만 바라봐도 가엾다. 다시 찾아 들어보는 원로 목사님의 기도 속에는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게 지켜달라는 기도가 애절하게 녹아있고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도 제목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슬픔은 결국 사랑이다. 슬픔을 겪지 않은 믿음의 선진은 아무도 없었고 고통 없는 구속사 시대는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 슬픔의 절정은 가장 큰 사랑이었고 인간이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명명백백 유일한 길이라는 표적이 되었다.
슬픔은 말한다. 슬픔 자체에 빠지지 말고 슬픔이 가르치는 것을 붙잡으라고. 우리에게 슬픔의 대상이 된 분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열방이 춤추며 몰려온다, 은혜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이긴다, 생명 바쳐 일하면 교회가 두 배 부흥한다고. 우리는 춤추게 되어 있고 기쁨으로 띠를 띠게 되어 있고 승리하게 되어 있고 두 배 부흥하게 되어 있다. 그러려면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고 은혜의 세력에 연합해야 하고 생명 바칠 열심으로 충성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 슬픔 자체의 눈물과는 또 다른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겠다. 그날,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고 모든 슬픔의 베옷이 완전히 벗어지고 새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춤을 추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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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말씀과 함께 영원한 승리를 향하여
계 17:9-17
설교 : 유종훈 목사
일시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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