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01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항상 느껴요. 힘들고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저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 주시더라고요.”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이끌어 내신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최소한 우리도 “돌은 굴려야 한다”며 실천적이고 도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갓 돌이 지나자마자 아버지를 여읜 박영기 장로님. 가장의 부재는 박영기 장로님의 공부에 대한 꿈을 잠시 접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친 후 식구들을 책임지느라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도 하고, 화장장에서 일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하지만 공부에 막 맛을 들였을 때 그만둔 아쉬움이 틈틈이 독서를 하게 만들었고 댁 염색공장에서 일할 때는 한자 3,000자를 익혔다. 당시 염색공장에서는 낮 11시간, 밤 13시간 주야 2교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야 했지만,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박영기 장로님이 서울에 올라온 것은 1984년 5월, 24세의 나이로 서울에 올라와 검정고시 학원비 3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신문사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고 한다. 한 달에 5만 원을 받아 노량진 검정고시 학원에서 2년 동안 중 고등학교 과정을 마무리할 정도로 학구열이 높았는데 학원에서 우연히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만나게 된다. 이어 노량진 대성교회에 등록해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 때에는 원로목사님께서 요한계시록 말씀을 하고 계셨는데 2, 3년 동안은 잘 못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말씀에 대한 열정보다는 전도사님이 만남의 광장에서 밥을 사 주시니까…” 말로는 당장 육신의 배를 채워 주는 교회로 발길을 옮겼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맛본 사람이 어디 맛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차근차근 쌓은 실력으로 학력고시를 쳤고 어느 권사님의 도움으로 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물론 신학대학은 그의 진로계획에는 없었던 일, 하지만 신학교를 가면 등록금을 대 주시겠다는 권사님의 권유로 입학을 하게 됐고 그 때 돈을 많이 벌어서 장로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장로의 터는 이 때부터 닦인 듯 싶다. 박영기 장로님은 신학교 1년 공부 후 조그만 무역회사에 취직하고 방송통신대학 법학과에 진학, 본격적인 법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5번의 고배를 마실 정도로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도 시험을 앞둔 수요예배 후 사업부 앞에 서 계신 원로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때 나온 말은 “기도해 주세요”가 아니라 “저 합격해야 됩니다.” 였단다. “그러고 나서 미스바 성전까지 내려갔는데 다시 뒤돌아서서 ‘꼭 붙게 책임지고 기도해 주세요’라고 소리쳤어요. 정말 절박했거든요. 그랬더니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 하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죠”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항상 괜찮냐고 물어보시며 다독거려 주시던 원로목사님. 일가친척 하나 없던 장로님에게는 교회가 내 아버지고, 어머니고, 형제였다.. 이러한 장로님의 간절함과 사모님의 3일간 금식기도로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이 합격에는 숨겨진 꿈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모님의 꿈 이야기다. “책상 위에 놓인 합격증을 뜯었는데, 또 합격증이 있더래요. 그리고 또 뜯었는데 또 합격증이 있었대요. 3차 합격증까지 있었나 봐요.” 떨어질 때마다 마음 고생으로 꽤 힘들었을 텐데도 장로님은 오히려 그 때 겸손을 얻었다고 고백하셨다.
하나님, 가족, 이웃과 함께
박영기 장로님은 5살 때, 눈이 못에 찔리는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신 상태다. 의료 기술 덕분에 2번의 수술 후 지금은 사람들이 전혀 눈치 못 챌 정도지만 예전에는 고통 때문에 머리까지 아프셨다고 한다. 실명한 눈 때문에 결혼 역시 순탄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눈’을 볼 줄 아셨던 사모님을 만나 지금까지 행복하게 생활하고 계신다. “나중에 말하기를 ‘그 때에 홴지 모르게 똑똑해 보이고 장래가 있어 보여서 반려자로서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믿음 안에서 시작된 결혼생활, 두 분은 희생과 기도로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 같은 사이로 지낸다. 항상 감사가 넘치게 하는 희은, 의영 자매, 첫째 희은이를 낳고 형제 없이 혼자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둘째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다 책임져 주시겠지. 살려 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낳은 거죠.” 그래서일까. 희은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평준화가 되어 있지 않은 김포에서 명문고에 진학했다. 이런 희은이 못지않게 둘째 희영이 역시 똘똘하고, 새 옷을 갖게 되면 제일 먼저 주일날 교회 갈 때 입는 모습을 볼 때는 기특하다. 사모님 역시 지구장으로, 유치부 교사로, 권사회 총무로 교회 일에 열심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8장 19절에 하신 말씀을 실천해 가는 가정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장로 임직을 받은 것은 2006년 12월.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장로로서의 책임이 느껴진다고 한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장로로서 많이 베풀고 싶은 마음이다. 덧붙여 사업적으로는 FTA법률시장 개방 이후 법무사와 공인중개사를 동시에 하며 틈새시장을 연구할 계획이다. 그래서 서민들에게는 어려운 법률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는 ‘서민의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하나님에게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는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박영기 장로님. 어느 자리에서나 허락해 주신 삶을 살 것이라는 감사의 고백이 2008년도에도 계속될 것이다.
출처 : 참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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