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06
시24:8, 왕하19:1-17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오늘은 터지고 깨지고 피투성이가 된 6.25 동란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하여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예고 없는 일방적인 기습공격으로 폭발한 6.25 동란은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휴전협정이 조인되기까지 만 3년 1개월 동안 150억불의 전비와 150여만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사상 최대의 비극으로 이 강산을 훼손시켰습니다.
56년이 지난 오늘에도 동란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으며, 북한측의 적화야욕은 추호도 감소되지 않은 채 우리는 언제 또 다시 당해야 할찌도 모르는 제2의 6.25 위협을 느끼면서 생존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 특히 6.25의 쓰라린 전쟁의 참화를 몸소 체험하지 못한 55세 이하 장·청소년 에서는 이 몸서리치는 동란의 비극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점차 농후해져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계속 되는 한 이 6.25 사변의 참혹했던 상처는 영원히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우리 한국의 백성은 상처 입은 민족이었습니다. 36년이라는 긴세월을 일본사람들의 몸서리치는 탄압정치아래서 신음하다가 해방된 지 불과 5년이 채 못돼서 또 다시 그 일본군국주의자들보다도 몇 천, 몇 만배 더 지독스러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인 전란의 흔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민족의 상처로 남게 된 것입니다.
6.25 사변을 38선 개성 도성 고지에서 직접 맞이했던 저는 우리 나라가 지키는 다른 어떤 절기보다도 더 중대한 의미를 가진 기념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 날의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저 자신이 지금 이렇게 살아 남아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 한 사람의 경험만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6.25를 경험해 본 60대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같이 느끼는 감상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쓰라린 경험과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선민 이스라엘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되어 오늘은 본문 왕하19장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져 합니다.
히스기야는 BC 726년에서 697년까지 남방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이스라엘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부왕 아하스의 위를 이어 25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올라 54세에 이르기까지 29년간 나라를 다스리는 가운데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선정을 베풀려고 무척 애를 쓰던 좋은 임금이었습니다(왕하18:1-2).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앗수르'라고 하는 가장 악질적이고 호전적인 민족이 있고, '살만에셀'이라고 하는 그 민족의 폭군이 있어서 자주 침략을 받기도 하고, 항상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왕 '살만에셀'은 희대의 폭군으로서 포로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기도 하고, 손을 자르고 귀나 코를 끊고, 눈알을 빼고, 혀를 빼는 잔악무도한 짓을 예사로 하는 인간이었습니다(왕하17:3,6, 18:9-11, 호10:14, 13:16). 그들은 피정복민족을 타국으로 이주시켜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도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지 4년째 되던 해에 이 살만에셀이 대군을 거느리고 북방 이스라엘을 쳐서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키더니, 살만에셀이 죽고 난 뒤 히스기야 14년에 그의 후계자인 산헤립이란 자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포위해 들어왔습니다(왕하18:9-16).
중과부적으로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에 항복하고 산헤립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으로 일단의 위급한 사태를 수습하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국력이 점차 강화되자 앗수르 왕은 그의 부하 다르단과 랍사리스, 그리고 랍사게 세 사람에게 명하여 대군을 이끌고 또다시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랍사게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심한 말로 왕과 왕이 섬기는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랍사게와 그의 동료들에게 일반국민이 듣지 못하도록 아람 방언으로 말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적장들은 더 큰 소리로 "나의 주께서 너희 임금과 너희들에게만 이 말을 하라고 보내신 줄 아느냐? 너희와 이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다 함께 그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왕하18:26-28) 하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옷을 찢으면서 비분감개(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차 있다, 슬프고 분한 것) 하여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궁내 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의 원로들에게 굵은 베옷을 입히고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가 선지자에게 전하던 말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나이다" 라고 한 유명한 말이었습니다(왕하19:3).
히스기야의 전갈을 받은 이사야는 왕에게 회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말했습니다(왕하19:7).
히스기야는 앗수르왕 산헤립의 편지를 받아들고 성전으로 올 가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떠서 보 옵소서, 산헤립이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9:14-16).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날 밤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진에서 군사18만5천을 다 쳐 죽였습니다(왕하19:14-19,35-37) (하나님께 온전히 심판을 맡기는 기도 시7:9-11, 37:5, 잠16:3) 아침에 보니 앗수르의 진은 송장으로 뒤덮혀 있었고, 산헤립은 그 뒤에 저들의 신전에서 아드랍멜렉과 사레셀이라는 친아들에게 칼맞아 죽고 말았습니다(사37:37-38).
이로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앗수르 제국은 멸망을 당하고 상처입은 민족 이스라엘은 상당한 기간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화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6.25 사변과도 방불한 이야기로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었던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그 날! 그것은 탱크, 전투기 같은 것은 하나도 갖지 못한 우리의 국군을 242대의 전차와 211대의 전투비행기, 30정의 해군함정을 앞세우고 주일날 새벽을 기해서 일제히 남침을 개시하여 삽시간에 3,000리 전역을 휩쓸던 6.25의 비극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3년 여의 전쟁을 통하여 많은 상처를 입었고, 아직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55주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산헤립보다 더 흉악무도한 북녁의 악마적 정체는 여전히 우리의 자유와 신앙과 생명과 강토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편, 그 날에 입은 바 하나님의 은총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적적인 유엔군의 개입! 그것은 우리 한민족,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간섭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전쟁은 멈추어졌습니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어떻든 55여 년이란 세월은 전면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흘러갔습니다.오늘 이 날에도 우리들은 상처입은 민족으로서 55여년 전 그 날을 되새겨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그 날의 비극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1. 터지고 깨지고 피투성이된 상처 입은 민족은 과거의 아픔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이란 성공의 기쁨을 받아들이기는 쉽지만 실패의 쓴 잔을 받아 들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하던 사람이 한번 병들면 맥없이 죽어가는 경우가 많아도 평소에 자주 앓던 사람은 여간한 병에 걸려도 도리어 오래 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배와 고통과 상처를 이겨낸 민족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1,900여년 전, 주후 7년에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때 로마 시에는 개선문이 세워지고 로마 정부는 승리를 기념하는 금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금화에는 '유데아 데비크라'(유대인을 쳐부셨다) 또는 '유데아 카프타'(유대인을 잡았다)라는 글자와 함께 기고만장한 로마병정의 발아래 유대인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로마 사람들은 승리를 기뻐하는 달콤한 술에 취해 있었고, 유대인들은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 로마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고 유대인의 역사는 그대로 남아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6일 전쟁이 시작되던 때 어느 이스라엘 군인에게 250만 인구 밖에 안되는 이스라엘이 1억 수천만 인구를 가진 아랍군을 이길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우리는 250만명 인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치스 독일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명의 전우가 있으니 반드시 이긴다"라고 하더란 말이 있습니다.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리지 않는 민족은 반드시 이긴다고 하는 위대한 확신입니다. "과거를 현재로 삼을수 있는 민족만이 미래를 장악할 수 있다 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오늘 6.25 당시와 같은 가난과 비극적인 불행으로부터 많이 달라진 발전된 조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쌀이 없어서 쑥을 캐다 먹고 소나무 껍질로 양식을 대신하고, 무밥, 진저리밥으로 허기를 면하던 해방이전의 쓰라린 가난은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옛날 일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무서운 원수떼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 엄연한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발전된 조국의 현실은 아직도 과거의 비극과의 연결의 줄을 걸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비극을 자초하게 되는 우맹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들의 조상이 학살을 당하던 수용소 건물에다 "용서해 주자! 그러나 잊어버리지는 말자!"고 써붙여 놓고 지난 날의 쓰라림을 오늘의 고통으로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잊어버리지 맙시다! 일본 사람들의 학정과 공산당의 폭력 앞에 피흘린 우리 민족의 상처는 영원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해 버리셨더라면 지금 우리의 역사는 소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산헤립의 군대가 히스기야의 기도와 이사야의 기도로 내려진 하나님의 간섭에 의하여 전멸된것 같이, 6.25를 일으킨 북괴의 군대가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과 우리 한국군에 의하여 패배를 당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선물이었습니다(왕하19:14-20).
2. 터지고 깨지고 피투성이된 상처 입은 민족은 하나님의 은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1950. 9. 29일 제1차 서울수복 환도에 즈음하여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말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의 상징인 유엔의 깃발 아래서 싸우는 우리 군대는 이제 한국의 수도를 해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공사주의자의 전제적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그 시민은 다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제일로 하는 부동의 인생관을 가지고 생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각하와 귀국정부 당국자가 사랑과 정의에 의하여 여러 난관에 대처하여 예지와 힘을 얻는 동시에 한국국민이 지난날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희망에 넘치는 새벽이 밝아올 것을 간절히 소원해 마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군대에게 금번의 결정적 승리를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경건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게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에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금부터 우리들은 한국의 국민에 관한 책임을 각하와 귀국 정부에 맡기고 본관과 부하 장병은 다시 군무에만 전념할 것입니다.자신과 용기와 희망에 넘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겸손과 경건의 정이 담겨진 담화문이 있습니다. 정말로 6.25의 승리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1950. 6.27. 밤 11:45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괴의 남침을 불법화하고, 유엔 경찰군 파견을 결의하던 그 순간에 쏘련 대표 말리크란 자가 중공의 유엔 가입을 고집하다가 뜻대로 안된다고 참석치 않았던 것도 참으로 고마운 하나님의 간섭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만일에 그때 그곳에 말리크가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히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고 유엔의 파병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나에서 100가지가 6.25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처 입은 민족을 위해 이 땅에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우리의 조국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교도의 자손인 미국의 공화국 찬가가 "글로리 글로리 할렐루야!"를 노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우리의 애국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3. 터지고 깨지고 피투성이된 상처 입은 민족은 하나님이 주신 조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일제의 탄압과 6.25의 상처는 조국에 대한 보다 강하고 견고한 애착심을 모든 국민의 가슴깊이 심어 놓았습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 신도들은 우리 자신들이 겪었던 우리 세대의 이 두 가지 비극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립된 조국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이같은 희생은 모두가 무가치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란은 삶을수록 단단하게 굳어지듯이 1200만 신앙인을 가진 우리 민족은 그와 같은 고난을 통해서 더욱 뭉쳐지고 굳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한 사6:13절의 말씀과 같이 전란을 겪고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린 민족일찌라도 그 뿌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대지에 박혀진 조국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덤은 희망의 상징이라"는 유대인의 격언이 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카라반이 인간의 시체를 묻어둔 묘소를 발견했을 때는 근처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힘을 얻는다는 데서 온 격언입니다.
6.25의 상처를 알려주는 수많은 무덤들은 이 나라와 이 겨례의 생명과 활력을 도와주는 희망의 묘소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들의 생명은 이 남한에 세워진 조국강토 위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공산당 당사로 쓰고 혹은 불태우고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흘리던 북한 땅을 불태워버리고 진리를 파수하고 회개운동을 일으키던 이땅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 여하에 따라서는 이 남은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또 다시 피를 흘려야 할 때가 올른지도 모르는 반면에, 언젠가 하나님은 저 닫혀진 북한 땅의 지옥문을 열고 그 곳에서 성도의 피를 마시던 붉은 용의 머리를 부숴버릴 때가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이 민족적 상처를 달래면서 하나님 앞에서나 나의 조국과 동족 앞에 신앙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조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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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말씀과 함께 영원한 승리를 향하여
계 17:9-17
설교 : 유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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