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30
욥1:1-2
동방 우스 땅의 부자였던 욥은, 아들 일곱에 딸 셋을 두었고 재산과 노비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욥은 날마다 정성껏 예배를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한 날에 죽고, 강도를 만나 수많은 가축들을 다 뺏기는 환난을 겪에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와 조각으로 긁어야만 할 정도로 처참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그때 아내마저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욥의 신앙을 보면서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가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최악의 절망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던 욥의 신앙을 배우라고 했습니다(약5:10-11). 욥이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결과를 기억하면서, 죽음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며 예배를 드린 욥의 신앙을 함께 배우길 원합니다.
1. 하나님 주권신앙
성경을 볼 때, 사단이 욥을 시험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이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욥을 참소할 때, 하나님께서 욥의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사단에게 붙이셨습니다. 결국 욥이 모든 시험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욥42:10-17).
욥이 이렇게 험난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하나님 주권 신앙' 이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계획 속에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는 고백은 욥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사상을 표현해 줍니다.
인간의 주권은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다시 취하실 권한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욥은 어떤 사건이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영의 눈을 보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자신은 하나님의 손 안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입술로 범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욥의 모든 소유를 빼앗아갔을 뿐 아니라, 그의 친구들을 통해 욥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꿈쩍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라는 사도 바울의 신앙과 같습니다(롬11:36). 사도 바울은 본래 좋은 가문에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복음 사역에 전념하면서 단벌신사와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직접 손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대로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도우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 바로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였습니다(고후6:10).
우리가 만약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이렇게 될 수가 있냐"고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예배드리는 자리에 계속 찾아 나올 수 있겠습니까? "국가적 부도 사태를 만나 모든 경제생활이 비정상이 되고, 가정에 어려움이 가득한데 어떻게 직분을 맡겠느냐"고 항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직분을 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고, 그 직분이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딤전1:12). 받은 바 직분을 경홀히 여기면 면류관을 빼앗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직장의 일과 다릅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것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깨닫고, 아무리 우리의 신앙이 테스트를 당한다 해도 "어림 없다" 하는 자세로, 입으로 죄 짓지 않는 모습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믿는 대로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2. 적신(赤身)의 신앙
본문에 보면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고 고백하는 욥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본연의 상태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도 이를 깨닫고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라고 고백했습니다(전5:15). 욥은 자기의 처음 나온 곳이 하나님께로 되돌아갈 줄을 믿음으로 보고 알았기 때문에 늘 즐거워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태도는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신앙,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가슴으로 되돌아갈 때에 희열이 솟구쳐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 생활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지금 당장 한 푼도 없으면 어떠냐? 내가 올 때에 한 푼 가지고 왔느냐? 내가 한 푼 없이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이러한 신앙이 있을 때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신앙은 한마다로 '늘 일어나는 신앙'입니다. 근심이나 걱정은 다 주저앉는 신앙입니다. 의심과 좌절 또한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절망의 비보를 연속으로 접할 때,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욥1:20). 그러면서 욥은 더더욱 충성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한 것을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무엇인가 자꾸만 가지고 가려고 할 때 욕심과 시기가 생기고, 남의 주머니를 노리고 속임수를 쓰게 되지만, 적신으로 나왔으니 적신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하나님 명령입니다. 바울도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6:7-9).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달리시기 전 마지막 날 약속하신 대로,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새 하늘 새 땅의 새 것으로 만족시켜 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마26:29).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두 사람이 길을 걷다가, 잎이 무성한 오리나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며 그 나무 아래서 더위를 식혔습니다. 어느 정도 쉬고 나자, 한 사람이 "이 오리나무도 쓸 데가 있구만..." 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오리나무가 "이 배은망덕한 사람아! 내 그늘에 와서 더위 다 식히고 몸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더니, 뭐? 오리나무도 쓸 데가 있다고?" 하면서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
죄와 허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시고, 죄 없다 선언해 주시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예수 믿어봤자 되는 일이 뭐가 있냐? 교회도 다니고 십일조도 바쳤지만 별 볼일 없더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오리나무의 말을 새겨보아야 할 줄 압니다. 실컷 오리나무의 혜택을 받아 놓고 오리나무를 시덥잖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사도 없으면서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감사를 드리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는 예물의 종류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미리 준비된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욥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며 적신의 신앙을 가지고 모든 욕심을 떨쳐버릴 때, 어떤 처지에서도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미처 준비된 감사를 드리지 못할 처지에 있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회개하면서 욥처럼 일어서서 감사와 찬송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가정과 직장과 사업마다 축복 해주신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해도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천성을 향해서 힘차게 달음박질하면서 감사하는 역사가 있길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축복은 그림의 떡이 아니라 실제입니다(히11:1). 모든 시험의 과정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주신 축복같이 흉년 가운데서도 100백의 결실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전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첫 열매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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