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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등록일
2014.05.04
본문
요 11:1-27
제14-18호
예수께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의 핍박을 염려하며 만류하는 제자들에게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며 “빛이 있을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권면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낮 열두 시’의 의미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낮 열두 시는 ‘예수님이 살아있는 동안’을 가리킵니다.
표면적으로 낮 열두 시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의 하루, 또는 하루 중 정오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을 의미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마치 자연계의 태양이 지면을 비추는 시간을 ‘낮’이라 하듯 ‘의로운 태양’(말 4:2)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머무르는 시간을 낮으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9:4에서는 좀 더 직설적으로 “때가 아직 낮이매”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요 9:5)고 분명하게 증거하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낮’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낮의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증거되는 때요(마 24:14), 그 복음의 빛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의 빛’입니다(마 5:14). 복음을 전하는 자, 복음을 믿는 자들은 저녁이나 밤이 아니고 늘 ‘낮’입니다. ‘빛 속에 머무르는 자’이며 ‘낮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물리적인 시간과 관계없이 예수님을 기준으로 낮과 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6일 전에 하셨으므로 낮 열두 시란 예수님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롬 13:12)라는 말씀을 통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영적인 시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는” 낮의 사람, 빛의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2. 낮 열두 시는 ‘복음전파의 기간’을 뜻합니다.
베다니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힌 무덤에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외치셨습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주님의 외침에 사망도 죽은 나사로를 붙잡았다가 놓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사망의 밤은 물러가고 예수님이나 나사로나 낮 열두 시를 만났습니다. 이처럼 낮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밝은 태양빛이 머물고 있는 하루, 깨어있는 시간이며 일하는 시간입니다. 일중에 일은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므로, 예수를 온전히 믿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낮 열두 시의 영적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고 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의 빛이 세상에 전파되고 빛 되신 주님이 함께하는 은혜의 때를 가리킵니다. 밤이 오면 이러한 기회는 지나가고 심판의 때가 도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빛 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믿고 살 때 우리는 낮 열두 시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종말이나 우주적 종말, 곧 심판이 올 때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요 6:29)입니다. 아직 심판의 밤이 오기 전, 하늘이 반시 동안 고요한(계 8:1) 낮에 사명에 충성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늘 정오, 열두 시와 같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이 땅에 계신 동안 아버지의 주신 사명과 명령을 한순간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요 12:50). 사명을 이루는 일에 한 번도 불순종하거나 주저한 적이 없습니다. 내일로 미룬 적이 없이 자신의 유익을 계산하지 않고 생명을 다했습니다(히 5:7-10).
3. 낮 열두 시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간직하며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은 썩어질 물질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생토록 있는 말씀”(요 6:27)을 위한 것입니다. 담대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 최후 승리를 이루기까지 달려가셨습니다(막 10:32).
십자가 승리를 이루시기 6일 전, 베다니에 들르신 예수님은 낮 12시를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선언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에 대한 선언입니다(요 11:24-25). 그 결과 죽어서 이미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예수님은 생명의 세계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생명 싸개로 덮어 주셨습니다. ‘생명싸개’라는 말은 원래 값진 보화나 귀중한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고대 근동지방의 풍속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를 나발의 처 아비가일이 다윗을 향해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라고 고백했습니다(삼상 25:29). 하지만 이 말씀은 다윗에게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모든 성도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싸개에 싸인 사람들은 밤이 없고 낮 열두 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 론 : 베다니의 뜻은 ‘슬픔의 집, 괴로움의 집’입니다. 그곳에 병든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빛 되신 주께서 오셔서 낮 열두 시를 선언하실 때 괴로움의 밤이 물러가고 생명의 낮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아 낮 열두 시, 축복의 시간을 붙잡는 역사가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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