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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베이더는 그림 중앙에 트인 조망을 열어 두었으나, 호싸르트는 경건한 실내 전경을 골랐다.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는 밝은 방을 제쳐두고, 어두운 내실을 재현 공간으로 선택한 화가는 다른 사상을 가졌다. 이콘 성모를 배격한 네덜란드 전통의 눈으로 보면 호싸르트는 심각한 예외읻. 그러나 이콘으로 향하는 만만한 회귀도 아니다.

호싸르트는 배경에다 삼공식 개선문 건축을 본떠서 반원형 무지개 문으로 마감한 벽감을 둘 파 두었다. 벽감은 성모자와 누가에게 하나씩 할당되었다. 그러나 보는 이의 시점은 마리아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누가에게 밀어 두었다.


누가의 작업탁자 밑에는 복음서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복음서를 펼쳐 두었던 베이더와 달리 책은 접어 두었다. 네덜란드 화가가 누가의 성스러운 직분을 동시대 화가의 신분 문제와 연루시켰다면, 여기서는 누가가 화가로서 실행하는 회화 시대 화가의 신분 문제와 연루시켰다면, 여기서는 누가가 화가로서 실행하는 회화 예술과 복음서 기자로서 실행하는 성서 기술 행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성모의 초상을 그릴 때도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둘 사이의 경중을 가리자면, 탁자 위의 '회화'가 탁자 아래 '복음서'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천사 셋의 시중을 받으며 금빛 구름에 파 묻힌 마리아에게 천사 둘이 왕관을 씌운다. '무염시태'의 기적과 '마리아 대관'의 기적이 동시에 실현되었다. 베이더는 '마리아 락탄스'를 모델로 세웠으나, 호싸르트는 '마리아 엘레우사'를 선호했다.


'엘레우사'는 '애닳게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마리아 엘레우사의 전형은 성모가 아기 예수를 품에 보듬고 쓰다듬으며 안타까운 동정과 애처러운 자비의 눈빛으로 지키고, 아기는 어머니와 뺨을 비비며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대는 도상이다.

누가의 머리 위 벽감에 모세가 앉아 있다. 구약의 영웅은 계명판을 들고 가리켜 보인다. 화가는 모세와 누가를 신학적으로 연결짓는다. 이들은 모두 신의 형용을 제 눈으로 목격했다. 모세가 불타는 가시떨기 앞에 신을 벗었듯이 누가도 신을 벗었다. 성전의 내실을 비추는 조명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성모가 빛의 환영으로 현신했다. 누가는 빛에 휩싸인 성모자의 모습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다만 자신의 내면을 밝히는 빛에 의지하여 손을 놀린다.

복음서 기자의 손길을 맞잡고 펜을 인도하는 천사의 소재는 카라바조의 첫 콘타렐리 제단화에서 배운 것이다. 여기서 천사가 예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의 피렌체 르네상스 복식을 차려입은 데 비해서 누가는 전통적인 옛 네덜란드풍이다. 호싸르트는 성자의 머리 위에 화가의 멍텅구리 모자를 씌워 두었다. 이로써 천국을 훔치는 화가들의 수고로운 행위가 신성한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 얀 호싸르트, <성모의 초상을 그리는 누가>, 1520년 무렵, 109.5x82cm,미술사 박물관,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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