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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4.04.03
※ 이 편지는 중국으로 탈출하였다가 한국으로 오려는 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게 된 한 탈북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본 내용은 탈북자 동지회에서 제공한 자료를 독자의 편의를 위해 난해한 북한 식의 표기를 우리 식 맞춤법으로 약간수정했습니다.)
=============================================================================
저의 가족을 좀 도와주십시오.
중국 공안원에게 탈북자라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저는 양손과 두발에 족쇄를 채우고 북한으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대기소에서 잠시 기회를 얻어 힘들게 편지를 씁니다.
그렇게 안기고 싶던 남조선 땅에 가지도 못하고 <남조선으로 탈출을 기도한, 조국을 배신한 자>라는 죄로 이제 며칠 후면 사형장으로 이송이 될 이 몸입니다.
저는 정치범이 모진 심문과 고문 끝에 공개 총살 당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제 저도 그런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의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말도 글도 모르는 아내와 철없는 두 아이를 타국에 남겨두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피눈물이 아니라 가슴에서 메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죄가 있다면 사회제도를 잘못 만나고, 두 아이를 굶겨 죽이기 싫어 탈북한 것뿐입니다.
왜? 한 반도인데도 이렇게 백성들이 사는 처지가 북 남이 다릅니까?
어서 빨리 통일이 되고 만백성이 잘 사는 날은 언제가 되겠는지요.
정말 그 날이 하루빨리 돌아오면 굶어죽고 죄 없이 죽는 이름 모를 만백성들의 소원이 풀릴 것입니다. 이번 일로 말을 모르고 돈 몇 천원이 없어 제가 붙들리고 죽어야 할 몸이었으니 정말 원통하고 한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철없는 두 아이가 아버지처럼 잡히지 말고 부디 따뜻한 남조선 땅에 안겨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정말 배고파 온 가족이 쓰러졌을 때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설움이 배고픈 설움인가 하였더니, 지금은 자기가 의지하고 지켜주고 안겨야 할 조국이 없는 설움보다 더 큰 설움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가고 싶지만 갈 길이 없어 못 가고 있다가 혹시나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해서 저 혼자 여기 저기 알아보고 다니다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조국을 반역한 배신자> 라는 죄목으로 총살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저의 남겨진 가족들은 살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손○○올림
------------------------------------------------------------------------------------------------------
"선생님 나 성경책좀 주시오"
새벽녘에 인기척이 있어 사립문밖을 내다보니 입성이 남루한 것이 언뜻 보기에도 북조선에서 온 것이 여실했습니다. 내 얼굴은 본 여인은 "여기 오면 살콰준다고 해서 왔수구마."
목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였습니다.
간밤에 개 짖는 소리가 심하더니 그 무서리를 다 맞고 온밤을 세웠는가봅니다.
나는 소리 없이 문을 열어주며 "쉬!" 하고 한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은 군불을 땔 수 있도록 만들어서 제법 훈기가 도는 토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래채에 있는 동료선교사에게 가만히 "손님 오셨소" 하고 아무 일도 없던 양 기도굴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그녀와 내가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삼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애가 둘 있다고 했습니다.
굶겨 죽일 수가 없어서 구걸질을 하다가 풍문에 듣고 왔다는 것입니다.
서른 대여섯은 됐으리라 싶었습니다.
성이 김가라고 했습니다.
훗날 알았습니다만 청진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얼굴은 붓고 오이 꽃이 핀 것이 속병이 가득하게 보였습니다.
그 후 철이 바뀔 때마다 그녀는 이 곳을 드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그렇듯이 그녀도 갈 때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고 짊어지고 갔습니다.
그녀가 한번씩 올 때마다 한 두 주일은 머물다 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도 그녀는 전혀 무관심한 체 한쪽 구석에서 딴전만 피웠습니다.
그녀는 도무지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다시 서리가 내릴 때쯤이니까 한 일년은 지나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서너 번은 왔다 간 것 같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내게로 다가와서 "선생님 나 성경책좀 주시오. 나도 예수 믿겠수구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그녀는 무서리에 옷을 젖으며 떠나갔습니다.
사립문을 나설 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미소를 보았습니다.
이슬매친 눈으로 애써 미소를 지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청진에도 한번 오시오" 하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주의 명령처럼 들렸습니다.
"그래 이제 나도 저 북녘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녀의 짐 속에는 30여권의 소형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 여종을 보호하소서!
- 두만강변에서 가조 선교사가 써 보냅니다.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게 된 한 탈북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본 내용은 탈북자 동지회에서 제공한 자료를 독자의 편의를 위해 난해한 북한 식의 표기를 우리 식 맞춤법으로 약간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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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가족을 좀 도와주십시오.
중국 공안원에게 탈북자라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저는 양손과 두발에 족쇄를 채우고 북한으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대기소에서 잠시 기회를 얻어 힘들게 편지를 씁니다.
그렇게 안기고 싶던 남조선 땅에 가지도 못하고 <남조선으로 탈출을 기도한, 조국을 배신한 자>라는 죄로 이제 며칠 후면 사형장으로 이송이 될 이 몸입니다.
저는 정치범이 모진 심문과 고문 끝에 공개 총살 당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제 저도 그런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의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말도 글도 모르는 아내와 철없는 두 아이를 타국에 남겨두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피눈물이 아니라 가슴에서 메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죄가 있다면 사회제도를 잘못 만나고, 두 아이를 굶겨 죽이기 싫어 탈북한 것뿐입니다.
왜? 한 반도인데도 이렇게 백성들이 사는 처지가 북 남이 다릅니까?
어서 빨리 통일이 되고 만백성이 잘 사는 날은 언제가 되겠는지요.
정말 그 날이 하루빨리 돌아오면 굶어죽고 죄 없이 죽는 이름 모를 만백성들의 소원이 풀릴 것입니다. 이번 일로 말을 모르고 돈 몇 천원이 없어 제가 붙들리고 죽어야 할 몸이었으니 정말 원통하고 한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철없는 두 아이가 아버지처럼 잡히지 말고 부디 따뜻한 남조선 땅에 안겨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정말 배고파 온 가족이 쓰러졌을 때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설움이 배고픈 설움인가 하였더니, 지금은 자기가 의지하고 지켜주고 안겨야 할 조국이 없는 설움보다 더 큰 설움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가고 싶지만 갈 길이 없어 못 가고 있다가 혹시나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해서 저 혼자 여기 저기 알아보고 다니다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조국을 반역한 배신자> 라는 죄목으로 총살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저의 남겨진 가족들은 살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손○○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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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 성경책좀 주시오"
새벽녘에 인기척이 있어 사립문밖을 내다보니 입성이 남루한 것이 언뜻 보기에도 북조선에서 온 것이 여실했습니다. 내 얼굴은 본 여인은 "여기 오면 살콰준다고 해서 왔수구마."
목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였습니다.
간밤에 개 짖는 소리가 심하더니 그 무서리를 다 맞고 온밤을 세웠는가봅니다.
나는 소리 없이 문을 열어주며 "쉬!" 하고 한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은 군불을 땔 수 있도록 만들어서 제법 훈기가 도는 토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래채에 있는 동료선교사에게 가만히 "손님 오셨소" 하고 아무 일도 없던 양 기도굴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그녀와 내가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삼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애가 둘 있다고 했습니다.
굶겨 죽일 수가 없어서 구걸질을 하다가 풍문에 듣고 왔다는 것입니다.
서른 대여섯은 됐으리라 싶었습니다.
성이 김가라고 했습니다.
훗날 알았습니다만 청진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얼굴은 붓고 오이 꽃이 핀 것이 속병이 가득하게 보였습니다.
그 후 철이 바뀔 때마다 그녀는 이 곳을 드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그렇듯이 그녀도 갈 때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고 짊어지고 갔습니다.
그녀가 한번씩 올 때마다 한 두 주일은 머물다 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도 그녀는 전혀 무관심한 체 한쪽 구석에서 딴전만 피웠습니다.
그녀는 도무지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다시 서리가 내릴 때쯤이니까 한 일년은 지나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서너 번은 왔다 간 것 같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내게로 다가와서 "선생님 나 성경책좀 주시오. 나도 예수 믿겠수구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그녀는 무서리에 옷을 젖으며 떠나갔습니다.
사립문을 나설 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미소를 보았습니다.
이슬매친 눈으로 애써 미소를 지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청진에도 한번 오시오" 하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주의 명령처럼 들렸습니다.
"그래 이제 나도 저 북녘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녀의 짐 속에는 30여권의 소형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 여종을 보호하소서!
- 두만강변에서 가조 선교사가 써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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