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6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합니다. 중학생 때 TV를 통해 ‘죄와 벌’이라는 흑백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저는 그를 ‘도선생’이라고 부릅니다. 100년도 훨씬 전인 사람, 눈빛 한 번 교환해보지 못한 사람을 지금도 좋아하는 것은 그가 기독교 사상을 관통하여 글을 뽑아내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에 꽂히면 좀체 바꾸지 못하는 제 성격 탓이기도 합니다. 그를 좋아하다 보니 러시아에 가보고 싶고 그가 살면서 집필하던 페테르부르크의 작은 아파트를 개조한 도선생 박물관에 하루 종일 고요히 머물고 싶어집니다. 그의 책을 읽다가 표지 날개에 실린 깍두기만한 사진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의 책들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독파하는 기쁨이란...... 이런 모든 것이 다른 시공을 살던 그를 살아있게 하고 만남과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존재가 결정된다는 그의 의견에 변함없이 공감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구속사를 읽고 놀라운 감동을 받았는데 저자이신 원로목사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에 무척 가슴을 애달아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만나 악수하고, 기도 부탁을 드리고, 눈빛을 나누고, 대화를 나눈 사람이 너무 부럽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구속사 시리즈를 다 구해서 읽고 저자께서 기도하셨다던 산기도처를 오르고 저자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 연수원을 찾아가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열정이 고맙고 콧날이 시큰했는데 얼마 안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구나, 아니 살아있는 그와 만나고 있구나. 조금 더 지나니까 만나서 두툼한 손을 잡아보고 깊은 눈을 마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지면서 그 사람의 순수함에 도전 의식이 생깁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읽으셔야 했던 이유, 3년 6개월 7일을 부르짖어 받은 말씀을 50년이나 저장하였다 쓰신 이유, 오직 예수님과 말씀에 모든 것을 바쳐버린 삶의 이유에 대해. 존재의 결정 때문이 아니었을까......짐작해 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고 생을 출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였고 구세주였습니다. 존재의 결정 때문에 죽음 당하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며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통해 직접 말씀을 들은 적이 없지만 기록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사랑합니다. 구속사의 저자는 보통 사람이 뭔가를 읽고 수를 세는 것만으로도 벅찰 만큼의 성경읽기에 몰입하셨고 고립 가운데 오랜 시간 기도하셨고 칡넝쿨에 글을 쓰셨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예수님 생애의 무늬와 향기와 촉감을 다 보고 맡고 만지고, 보혈에 싸인 영원한 생명과 죽지 않는 영혼과 깨닫는 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뜻과 변치 않는 마음을 살과 뼈에 새겨 넣으셨겠지요. 그런 과정은 도저히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구속사만이 오롯이 대변합니다. 저자의 존재 결정과 삶이 옳았다는 것을.
여전히 읽는 것에도 쓰는 것에도 목이 마르고 허기가 집니다. 태양은 저렇게 강렬한데 저는 오슬오슬 추울 정도의 서러움을 낱낱이 느낍니다. 존재의 결정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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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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