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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6.07.31
사명감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해야 한다는, 나 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꽤 오래전 일인데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워크샵(영화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약 6개월 코스였는데 비용이 만만찮았다) 에 등록했다. 수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이미 작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다시 드는 생각이지만 역시나 어이가 없다.
워크샵에는 라디오 작가, 광고 카피라이터, 정신과 의사, 경제신문기자, 시인, 학생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수업을 받았고 매일 똑같은 일과 사람들에 지친 나에게는 그나마 신선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조금 자극이 되긴 한 것 같다. 수업이 거듭되고 서로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뭉치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신촌 근처의 맛있고 저렴한 곳의 리스트가 점점 늘어갔고 그와 비례하여 나의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모이고, 근처에 새로 오픈한 곳이 있다고 해서 모이고, 누가 공모전서 상 탔다고 해서 모이고, 매번 만났는데 오늘 그냥 갈 수 없지 않냐며 또 모였다. 핑계도 가지 가지였고 만들기 시작하니 한도 끝도 없었다. 말이 좋아 워크샵이지 동네에서 두꺼운 안경 쓰고 비디오 좀 열심히 봤을 법한 형, 누나들 그리고 기타 등등이 모인 영화 동호회 같았다고 할까?
나름 한 영화 한다는 우리는 전후 이탈리아의 리얼리즘 영화나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들, 유명한 배우들의 메서드 연기 스타일까지 영화 전반에 걸친 열띤 토론과 심도 있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보통 이런 얘기는 안 한다. 대게 그럴 것이다. ) 대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연예계 뒷얘기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을 열정적으로 풀어 놓았다. 라디오 작가도, 기자도 있었고 영화감독인 워크샵 강사 또한 합류했으니 끊이지 않고 나오고 또 나왔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참 어이가 없다.
워크샵에 나가는 건지 미식회에 다니는 건지 분간하기 쉽지 않았으나 등록비는 아깝지 않을 정도의 어떠한 것을 배우기는 했는데, 그것은 글 쓰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 어떠한 삶의 자세, 즉 애티튜드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영화감독이자 워크샵 강사)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거의 두 시간 동안 장황한 말로 열변을 토했다. 간단하게 핵심만 말하자면, 정말로 시나리오 작가로서 그리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성공하길 원한다면 가족이나 친구의 경조사와 각종 친목모임, 좋아하는 사람과의 데이트까지 글 쓰는 것과 관계없는 소모적인 모든 일을 과감하게 끊으라는 얘기였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음, 아니다. 먹는 것은 상관없는 듯 하다) 글도 잘 쓰고 친구도 살뜰히 챙기며 집안일도 완벽히 챙기는 것은 물론,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슈퍼맨(글을 무지 잘쓰는!) 같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정말이지 염치도 없는 도둑놈 심보라고 했다.
글을 쓰는 일에, 자신이 하는 작업을, 진정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그러한 자세와 태도에 대한 그의 말은 지금도 선명히 내 맘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러모로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요즘 같아서는, 참된 신앙생활과 동시에 세상에 속한 공동체 속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일은 종종 우리를 지치게 한다. 산더미 같은 직장일과 끝이 없는 집안일, 다사다난한 집안 식구들의 대소사를 일일이 챙기다 보면 나의 신앙과 믿음을 지키고 말씀과 기도를 쉬지 않으며 온전한 주일을 지키는 것,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며 온 맘을 다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신앙생활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2016년 8월 1일, 하계 대성회의 모든 일정이 정말 코앞까지 왔다.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소모적인 일들과 어떠한 방해 없이 오로지 말씀과 찬양, 기도에 온 마음을 다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1년 365일 중 딱 5일간은 바깥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정말 원 없이 빠져들고 취할 수 있다. 야근을 뒤로하고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며 조마조마 팀장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주일 4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늦은 시간, 누구의 잔소리가 신경 쓰여 발걸음은 또 얼마나 무거웠던가! 부디 이번 하계 대성회만큼은 말씀과 찬양, 기도에 전심으로 몰입하고 집중했으면 한다. 지금까지 부족했다면 다시 한번 정비하고 채우면 될 것이고, 앞으로 남은 하반기를 달려갈 힘과 은혜 또한 한아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교회는 나를 비롯한 세 명의 정문 아재가 있으니 걱정일랑 마시고(이 말이 못 미더운 거 알고 있다. 나대로 노력하고 있다. 정말이다) 맘 편히 다녀오시라!
일주일 후 돌아오는 여러분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5일간 여주연수원에서 받은 말로 할 수 없는 크나큰 말씀의 은혜와 잊을 수 없는 감격을 말이다.
그런 것은 정말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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