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1
신4:7, 고후1:18-22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모든 기도에 “그래, 내가 알았다!”고 흔쾌히 응답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1. ‘내 언약’을 생각하시고, “그래,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되 당신께서 맺으신 ‘언약’을 생각하시고 들어 주십니다. 사람의 언약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레26:42 말씀을 볼 때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식 없는 원통한 마음으로 한나가 금식하며 성전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권고하사’ 잉태케 하여 사무엘 선지자를 주셨습니다. 결국 닫힌 태를 여사 아들 셋과 딸 둘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해 주신’ 결과입니다(삼상1:19). 이처럼 ‘생각한다’는 말 속에는 사색과 기억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또 기억하사 행동으로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라헬을 ‘생각하사’ 그 태를 여시고, 요셉을 ‘생각하사’ 생수의 축복을 통해 무성한 가지, 형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언약 속에는 ‘권념’과 ‘권고’의 축복이 수반돼서 나옵니다. 노아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들을 ‘권념하사’ 바람이 불어 물이 감하게 하셨고(창8:1),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념’하시되(출2:24-2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사’ 권념하셨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선지자도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느5:1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사 “그래, 알았다!” 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2.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래, 알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그래, 알았다!” 하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창19:29 말씀 볼 때, 하나님께서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 성의 멸망에 관해 아브라함과 상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벗’이 될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입니다(대하20:7, 사41:8, 약2:23).
이를 볼 때 우리는 중보기도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상대를 위해 백 마디 말보다 아브라함처럼 간절히 중보의 기도를 올릴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시106:45에서도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야고보 기자는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할 때도 먼저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강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합3:2).
광야 40년 여정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까? 불순종과 패역으로 인해 수많은 징계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도록 중보의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려 고생할 때도 모세가 기도했고, 형인 아론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결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이 임하려 할 때 땅에 엎드려 긍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사람도 모세입니다.
악한 말로 원망하여 하나님이 불을 보내 진을 살랐던 ‘다베라’에서(민11:1-2), 가나안 정탐 후 그 땅을 악평한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심판 받은 가데스에서(민14:13-19) 모세의 중보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를 푸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민14:20).
3. 회개하는 죄인을 생각하사, “그래, 알았다!”
하나님은 짐승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사람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선언하셨습니다. 여인이 젖 먹는 자기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아니하십니다(사49:15, 시27:10).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하지 않는 위선적인 바리새인 때문이 아니라, 창기와 세리같이 자기 마음이 아파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회개하는 죄인들의 기도를 들으사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래, 알았다” 하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 속에는 이러한 사랑과 자비가 깃들여 있습니다. 언약 속에 이러한 자비와 사랑이 없다면 가짜입니다. 자비와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손해 보시며 당신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롬5:8).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의 행동입니다. 이러한 언약의 성취 속에 나의 의와 노력은 조금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일 뿐입니다(고후5:14).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그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문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야 합니다. 삭개오가 죄인이지만 주를 사모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때 예수님께서는 만나 주시고, 그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눅19:8) 선언해 주시고, 삭개오에게 권고와 권념의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결론 :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 앞에 우리는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딤전1:14). 나는 아무 것도 한 것 없고, 흉악한 죄인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생각하시고,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또한 회개하는 죄인의 기도를 기억하사 “그래, 알았다!” 하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에 믿음과 사랑으로 보답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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