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1
행7:54-60, 딤후4:7-8
우리가 참된 기독교, 참된 신앙에 대해 말할 때 첫 번째는 개혁주의 신앙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지키다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순교적 신앙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와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런 신앙의 소유자들로서 참된 복음의 일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진정한 개혁주의란 목숨 바쳐 진리를 사수하는 곧은 신앙입니다.
시19:8에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한다고 하였고, 딤후3:16-17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말씀을 받으면 그 권세와 능력으로 어둡고 답답한 마음, 사기, 도둑, 모략하려는 마음이 다 깨어집니다. 또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며 경건하게 살고자 하여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딤후3:12-15). 진정한 개혁주의 정신이란 바로 불의의 세력 앞에서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생을 주는 참 말씀이라고 외치는 스데반 집사 같은 신앙입니다.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당시 믿고 있던 천동설을 뒤엎는 지동설을 주장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자로 몰리고, 성직자들은 그의 저서를 ‘악마의 책’이라며 불태워버렸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마저도 그의 이론을 비난했습니다. 그 뒤 이탈리아 수도사 부르노가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읽고 지동설을 받아들여 그 내용을 설교하다가 교회의 노여움을 사 화형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약 100년 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다가 지동설을 주장하여 1616년 교황청 종교재판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지동설 포기서약을 했습니다. 그 후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고 책을 통해 천동설의 오류만을 지적했습니다. 1633년 칠순 노인이 된 갈릴레오가 다시 로마 미네르바 대광장에서 열린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지동설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맹세하였으나, 그는 재판정을 나오면서 낮은 목소리로 “그래도 여전히 지구는 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은 1757년 갈릴레오에 대한 유죄 선고를 비밀리에 취소하고, 종교재판이 있은 지 200년 뒤, 지금부터 176년 전인 1835년에 공식적으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의 저서에 대한 금서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처음에 심한 비난을 받던 이론에 대해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누구 편에 섰고 무엇이 참 진실이었습니까?
2. 복음의 일꾼은 순교적 신앙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느냐 할 때, 정확한 기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으며, 초대 교회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를 통해 가장 정확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 집사의 실로 감동적이면서도 첫 순교의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신앙이란 첫째 하나님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편의대로 갈아입는 옷과 같이 벗었다 입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입으면 그 나라 갈 때까지 믿음의 옷을 벗지 말고 계속 입고 있어야 합니다. 최후 영광에 참예할 것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뒤따라감으로써 자기 생명마저 헌신짝같이 버리는 것이 순교이며, 그게 바로 개혁주의적 신앙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발단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을 통해 받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가운데 오직 복음 증거에만 몰두했습니다(행6:8). 그가 자기 말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사람들이 당해내지 못하자,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여 유대 백성과 종교 지도자들을 충동질하였습니다(행6:3, 8-12). 이에 스데반을 공회에 잡아와 대제사장이 그를 심문하며 “이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었을 때(행7:1), 스데반은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52절(행7:2-53)에 걸쳐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설교 말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본적으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해 항상 성령을 거스려 의인을 핍박하고, 결국 메시아 예수를 죽이는 살인죄를 범하였다고 거침없이 질타했습니다(행7:51-53). 스데반의 설교는 양날이 선 칼날 같아 심원골수를 찔러 쪼개 모든 병든 부분을 깨끗하게 수술해주는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말씀의 칼에 찔린 유대인들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종교 지도자들이 마음에 찔려(행6:10, 7:54), 그를 향해 이를 갈고 듣기 싫다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행7:54, 57).
스데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씩씩거리며 양손에 돌을 쥐고 일심으로 달려들었지만, 그것을 쳐다보지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행7:55-56). 사람들이 주목하여 본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행6:15). 그는 저희의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용서의 기도를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고 평안히 잠들었습니다(행7:59-60). 참으로 스데반은 ‘면류관’이라는 그의 이름의 뜻처럼 오직 하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살다간 위대한 신앙가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시험을 끝까지 참아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약속하고 계십니다(벧전5:4, 딤후4:8, 약1:12, 계2:10).
주후 155년경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도 예수를 믿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거듭된 회유에도 불구하고 “내가 86년 예수를 섬기는 동안 그분이 한 번도 나를 나쁘게 대하거나 나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 입으로 주님을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기꺼이 화형 당해 죽었습니다.
계6:9-11에서 하나님은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순교자의 영혼들에게 정하신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스데반과 폴리캅 같이 성경 말씀만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기도하고 애쓰는 신앙을 굳게 지켜 아무나 우리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계3:11).
결론 : 앞서 간 우리의 선배 신앙가들은 총칼의 위협이나 몸이 불살라지는 상황에서도 태연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감사 찬송하면서 순교하였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유산 중에 수천억 재산은 쉽게 없어지지만 마음에 심겨진 믿음만큼은 원자탄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예수의 부활의 신앙으로 심한 고생, 넘치는 환란을 당한 사도 바울의 후계자가 돼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요11:25-26, 고후1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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