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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7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 교만과 육정의 패덕을 이기는 겸손과 절제의 미덕

이스라엘의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이 되었다. 앗시리아 왕 느부갓네살이 장수 홀로페르네스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구약 제 2경전 유다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적장의 운명은 힘없는 과부의 손에 붙여졌다. 잠든 적장의 머리를 잘라 오자 용기를 얻은 이스라엘이 일어나서 대군을 물리친 것이다.

유다서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이견이 많다. 줄거리 전체를 허구로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서에서 앗시리아 왕으로 나오고, 그가 파견했다는 장수 홀로페르네스의 이름이 어떤사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부 유다가 잠든 적장의 침소에 들어가서 목을 잘라 오는 이야기는 유대 민족이 주변국들에게 겪어야 했던 박해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복하는 고난에 대한 교훈의 소재를 각색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합리적이다.

천막 휘장이 열렸다. 유다의 파란 옷에 금빛 아침 햇살이 묻었다. 오른손에 적장의 칼을 쥐고 왼손에는 수급을 들었다. 보는 이마다 '넋을 잃은' '매우 아름운' 과부의 모습이다. 유다와 동행한 하녀 아브라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자루를 벌린다.

유다의 자세와 옷차림은 만테냐의 고전 취미를 드러낸다. 그리스 여인들이 입었던 흰색 키톤이 유다의 어깨에서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고대 입사오가 석관 부조에서 배운 콘트라포스토가 유다의 영웅적 자세를 만들었다. 속옷의 주름이 몸뚱이의 숨은 윤곽을 드러내고, 그 위에 겹쳐 입은 겉옷이 발바닥에서 머리에 이르는 몸의 움직임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속옷 주름을 재투영하는 기법도 고대 조각의 유산이다.

성서에는 유다가 장막 '밖으로 나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하녀에게 주었고, 하녀는 그것을 곡식 자루 속에 집어 넣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만테냐는 머리를 자루 속에 담는 일을 유다에게 맡겼다. 죽은 사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유다의 가녀린 손이 그림 중앙에 놓여 있다.

홀로페르네스는 '진홍포와 금과 에메랄드와 보석으로 장식된 휘장으로 둘러 싼 침대 위에' 머리가 달아난 채 여전히 누워 있다. 그림 배경의 차분한 실루엣을 그리는 장막과 침대 위에 반듯이 놓인 비운의 발바닥에서는 이상하게도 죽음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유다의 자세와 표정에서도 관능, 흥분, 두려움, 떨림을 읽어 내기는 어렵다.

왜 그랬을까? 그림에서 뜨겁고 차가운 조형의 사용을 포기하고 차분한 색조를 선택한 것은 극적 사건을 과장되게 연출하기보다 고전적 품격을 견지하려는 화가의 의도와 잘 맞아 떨어진다. 만테냐의 고전취향은 성서 주제를 설득력 있게 재현하는 일보다 고대 미술의 준범을 복원하는 일을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 만테냐의 모작,<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다>, 1490년 이후, 30.1x18.1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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