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3
행13:44-52
오늘 본문의 비시디아 안디옥은 BC 300년경 시리아(수리아) 왕국의 셀류쿠스 1세가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쿠스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 중 하나로, 행11장의 수리아 안디옥과 구별됩니다. 이곳은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때 처음 설교했던 곳이며, 그로 인해 세계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 갈라디아 지방(터키의 동남북 지역)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가십니다.
당시 안디옥은 주전 25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로마의 속주가 된 이후, 헬라인, 유대인, 로마인, 본토 브루기아인 순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 중 유대인이 모든 경제적 상권(商權)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영향력이 큰 만큼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도 많고, 그 결과 내쫓김을 당했지만, 그곳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죽지 않고 살아서 신분, 빈부에 차별 없이 역사하였습니다(행13:48-49). 안디옥의 많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바울의 설교(행13:16-41)를 들은 후, 바울과 바나바를 좇았으며, 다음 안식일에도 그 말씀을 듣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행13:42-43). 그들이 일주일간 얼마나 소문을 냈는지 실제로 다음 안식일에는 ‘거의 온 성읍’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습니다(행13:44). 이를 본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에 반박하고, 또한 경건한 귀부인들과 지도층을 선동하여 결국 바울과 바나바를 그곳에서 쫓아냈습니다(행13:44, 50).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오히려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이제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향한다”고 하였습니다(행13:46, 51-52). 비록 그들이 복음을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채 핍박당해 쫓겨났지만, 하나님은 사단 몰래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의 마음속에 심으셔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하심으로 주님의 말씀이 온 지방에 두루 퍼지는 복음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행13:48-49).
2.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집니다.
‘작정’(테타그메노이)은 군사용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첫째, ‘정확히 정돈하여 제자리에 두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 아담같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많은 죄를 지으며 돌아다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우리를 부르사 지명한 장소에 두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죄진 우리의 현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 받고 위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끝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정됐다’는 뜻으로 작정된 자는 반드시 예수를 믿게 된다는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구원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아무리 우리의 죄를 들어 참소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듣지 않으시고 세상이 홍수에 엄몰되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아 도망가다가 ‘루스’(‘살구나무’라는 뜻)라는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창28:10-15). 지금까지 조상의 하나님, 막연하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만 알았던 야곱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고 그곳에 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여(출3:15, 시135:13, 시102:12, 호12:5) 그곳 이름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습니다(창28:16-19). 그로부터 20년 후 귀환 시에 야곱은 얍복 근처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김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환도뼈가 위골되었는데도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끝까지 매달리는 야곱의 그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신 것입니다(창32:24-29). 성도 여러분, 우리가 씨름하듯 힘을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중심의 간절함을 보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면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 이름이 ‘이스라엘’로 개명되었다는 것을 믿고, 모든 생활에 승리의 역사만 있기를 바랍니다.
3. ‘이스라엘’로 개명(改名)된 자는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로 개명된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같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마28:19, 막13:10, 16:15, 행1:8, 골1:23).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롬10:17, 요10:27). (복음을)‘듣는다’(행13:44)는 것은 ‘이해한다, 취한다, 순종한다’ 등의 뜻으로,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신령한 이스라엘이 된 성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며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복음의 역사를 믿는 성도는 먼저 진리(복음)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엡6:14). 허리띠는 옷을 몸에 잘 맞게 하여 의복과 몸을 결속시킴으로 허리에 힘이 생기게 합니다. 또한 군인의 깨어있는 자세와 행동의 신속함을 의미합니다(눅12:35, 왕하4:29, 아3:7-8).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 유월절 양을 먹을 때 허리띠를 매었던 것처럼(출12:11, 요1:29), 하나님은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 등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먼저 ‘허리를 동이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왕상18:46, 왕하9:1, 렘1:17, 마3:4). 그래서 복음 전파의 사명자는 전쟁에 나가는 용사같이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욥38:3, 출32:27). 그런데 우리가 맬 허리띠의 재료는 ‘굵은 베’인데, 이는 ‘슬픔, 애통, 회개’(창37:34, 렘48:37, 암8:10), ‘겸손’(벧전5:5, 요13:4-5), ‘착한 마음가짐’(벧전1:13)을 상징합니다. 이는 복음을 전할 때는 먼저 겸손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여 허리를 굽히고 또 굽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론 : ‘머리’로 깨달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발’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이 된 성도 모두 허리를 동이고 아합을 앞질러 빨리 달려간 엘리야같이 복음의 허리띠를 띠고 온 천하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에게 빨리 달려가서 말씀을 전하는 ‘아름답고 복된 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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