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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취했다. 거푸 들이킨 포도주가 늙은이의 피를 달구었다. 왼손으로 흘러내리는 겉옷을 추스리면서 오른손은 여인의 탐스런 어깨를 감싸안았다. 무릎을 곧추 세우고 허벅지로 여인의 미끄러운 아랫배를 문지르는 롯의 관능적인 자세는 150년 전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아담에서 나왔다. 아담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신성한 영을 건네 받았으나, 롯의 딸은 붉은 입술을 기다린다.

속이 비쳐 보이는 윗옷을 걸친 이가 언니일 것이다. 첫딸이 롯의 겨드랑이를 끌어안으며 풀밭에 눕히는 동안, 아우는 술잔과 포도송이를 들고 다음 날 밤을 준비한다. 그녀의 품에서 흘러내린 멜론과 살구, 복숭아는 모두 살의 유혹을 의미한다. 아우와 아버지는 왼발이 닮았다. 아우의 시선은 그림 밖의 보는 이를 향한다. 그림속의 줄거리로 초대해서 성서의 교훈을 일깨우는 안내자의 역할을 맡았다. 유혹에 대한 롯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흘러내리는 도덕을 추스리는 왼손과 다가오는 유혹을 반기는 오른손의 자세는 술잔을 비우기 전과 후의 차이처럼 판이하다. 세워서 접은 무릎의 자세도 저항과 탐닉의 이중적인 뜻을 가졌다. 롯은 눈을 들어서 첫딸의 낯선 얼굴을 바라본다. 롯의 눈길에서 질책의 표정을 읽는다면 성서의 기록에 대한 화가의 자의적 해석일 것이다.

롯의 이야기는 누가 17장에서 재차 인용된다. 창세기의 사건이 심판의 날에 벌어진 잉레 대한 예고로 해석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세비야의 이시도루스가 소돔의 재앙을 최후의 심판과 연결지어서 설명했다.

'또한 롯 시대와 같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짓고 하다가 롯이 소돔을 떠난 바로 그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자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롯이 소돔을 떠나 달아난 것을 가지고 육탐의 욕망을 멀리한 행위에 비견했고, 생 빅토르의 위고는 영혼이 영생을 구한 것이나 같다고 해석했다. 롯을 인용한 누가의 대목에 덧붙여서<가난한 자의 성서>에서 롯의 도피를 세상의 멸망과 죄악의 요람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니 소금 기둥의 저주를 받은 것이 당연하다고 본 것은 세비야의 이시도루스와 생빅토르의 위고 그리고 암브로시우스가 모두 한결같다. 13세기 중반에는 서원을 저버리고 수도의 길을 포기하는 수녀들에게 '롯의 아내'라는 수치스런 명칭이 보태어졌다. 구원의 길을 마다하고 세상의 삶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 얀 마세이스,<롯과 두 딸>, 1563년 무렵, 151x171cm,미술사 박물관,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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