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2
고전15:12-20, 벧전 1:3-4
지금은 생명이 약동하는 봄철, 자연계의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계절, 동식물이 생동하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움츠리고 적막하여 다 죽은 것 같이 됐던 이 강산에 봄기운이 돌고 만물이 생동하는 생명의 동산을 이루는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큽니다.
1. 주님의 부활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생전에 "3일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여, 예수의 무덤을 인봉하고 파수꾼을 두어 사흘 동안 지키게 하였습니다(마27:63-66). 만일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하여 "예수가 살아났다"고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일날 새벽 큰 지진과 함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천사들이 돌을 굴려 내는 광경을 목격한 파수꾼들은 너무 놀라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마28:1-4). 이 사실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자, 장로들과 의논하여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그들이 "잘 때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말하라" 하였고, 군병들은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여 이 거짓말이 오늘날까지 두루 퍼지고 있습니다(마28:11-15). 지금도 "예수의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며 죽은 자의 부활을 희롱하고 비꼬면서 말하는 후메내오, 빌레도 같은 얼빠진 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딤후2:17-18). 그러나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요 또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예수 믿는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반증(反證)하고 있습니다(고전15:13-19). 예수의 부활이 너무나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심한 핍박을 당해 각 지방으로 '흩어진 나그네'(벧전1:1)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로마 시민권자요, 다소 대학과 가말리엘 문하생 출신의 사도 바울이 그렇게 고생하고 자기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였겠습니까(행20:24, 22:3)? 성도 여러분, 2천 년 역사 속에 자리잡은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주일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 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늘로 막연하게 사라져 어느 구석에 도망가서 없어진 분이 결코 아닙니다. 자그마치 부활 후 40일 동안 11번이나 나타나셨고, 마지막에는 500명이 보는 가운데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롬8:34, 행7:55-56). 부활의 진리는 확실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실제 사건이며, 국지적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근거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아주 분명하고 확실해졌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11:1).
2. 주님의 부활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산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자들에게 세세무궁토록 산 소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소망의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딤전1:1, 살전1:3).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산 소망’이며, 또한 이 땅에서 33년 사시면서 우리에게 영생의 복음을 주신 것, 나아가 속죄 제물로 만인간을 대신해 피를 흘려 주신 것이 인류에게 ‘산 소망’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절대 비밀로, 예수를 믿으면 하늘에 다함이 없는 비밀을 알게 되니, 이것 역시 ‘산 소망’입니다(고전2:2, 골1:27).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활을 확실히 봤기 때문에 자신도 부활한다는 ‘산 소망’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로서 영원히 변치 않는 성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산 소망’은 성도에게 ‘복스러운 소망’(딛2:13), ‘끊어지지 않는 소망’(잠23:18, 24:14), ‘견고한 소망’(고전1:8)이 됩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으로,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셨습니다(요1:14, 17).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으로 소개하였고(요8:40), 빌라도에게도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8:37). 그러면 ‘진리’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죄를 대속하기 위해 속건 제물로 오셨다는 사실이 진리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원히 산다”고 하신 말씀 자체가 진리입니다(요3:16).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보다 거짓말 믿기를 좋아하여, 비진리가 진리를 죽입니다. 마침내 진리이신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이 모의하여 돈으로 거짓 증인을 사고, 원수지간인 빌라도와 헤롯 왕이 당일에 친구가 되어 ‘불의한 재판’을 함으로 십자가에 죽였습니다(눅23:12, 마26:59).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로 진리에 서지 못한 자들입니다(요8:44). 스데반은 이들에게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는 의인을 살인한 자”라 말씀하다가 돌에 맞아 처참하게 순교했습니다(행7:51-52). 반면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두 사람은 70명 공회원 중 68명이 대세에 따라 예수님의 사형 판결에 가결할 때 부결표를 던져 진리 편에 선 자들입니다(눅23:51). 특히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밝히고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향품을 가져온 니고데모와 함께 친히 세마포로 싸서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를 지내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하였습니다(막15:43-46, 요19:38). 이때 3년 동안 누구보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 가며 기사이적을 체험하고 하늘의 비밀의 말씀을 배웠던 11제자는 모두 도망가고 없었습니다(마26:56).
결론 : 오늘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아나야 하리라!”(요14:19)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약하고 병든 신앙, 곤고에 빠지고 어려움에 짓눌려 죽게 된 개인과 가정, 사업, 나아가 대한민국에 주님의 부활의 신령한 바람이 불어와 모든 어둠을 내쫓고, 부활의 새 아침을 맞아 천국을 향해 힘차게 달음박질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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