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5
굳어져버린 발뒤꿈치의 살이 이제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상처 속 피가 굳어지니 이내 검게 썩은 듯한 갈라진 자국으로 변한다. 사뭇 놀랐으나, 검은 양말의 솜털이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을 알아챈 후 애써 위안덩이로 삼는다. 얼마 전까지 그래도 옆에서 랜턴이라도 비추어주던 가이드의 작은 숨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희미한 빛의 흔적조차 나름 위로가 되었던 이번 산행 길도 검푸른 어둠의 위압감 속에 선뜻 발을 내딛기 쉽지 않은 듯하다.
동행(同行)이라는 말을 처음부터 듣지 않았다면, 그저 이 여정이 인생의 한 부분을 오롯이 장식해 줄 하나의 고품격 관광 옵션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이리 힘들고 괴롭지 않았을 산행 길이였을 터. 이 단순한 두 글자가 내 심장의 한계치를 테스트하고 있는 듯, 온몸이 굳어가고 있는 것 같다.
희망고문이라 말하는 사람들
작은 희망의 싹이 보일 듯 보이지 않아, 흡사 고문과도 같은 괴로움에 처한 상황을 희망고문이라 일컫는다. 수많은, 아니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 위대한 신앙 선배들의 삶은 마지막 그 모퉁이를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희망고문의 연속이었는지 모른다.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그동안 수많은 모퉁이를 돌아보았지만 정상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험준한 광야의 메마름이 그들의 발뒤꿈치를 더욱 갈라지게 만들었으니, 이분들 역시 ‘희망고문’이라는 단어를 수천 번 곱씹으며 걸었으리라. 아니 그들조차도 충분히 그러했으리라 애써 믿고 싶은 심정은 비단 우리만의 소망일까?
왜 내가 히브리어를?
평강의 성도라면, 아니 천국 입성의 최고 레벨에 도전하는 ‘침노하는 자들의 의무’가 있다면, 히브리어를 -언어 자체를 정확히 모른다 해도- 최소한 알파벳 정도라도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구속사 시리즈에서 저자가 그토록 수없이 강조했던 여러 단어들의 히브리 원문적 해석들을 몇몇 사람들의 의무로만 애써 치부한다면, 이는 조금 냉정히 바라볼 때 비동행(非同行)적 행동이 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찌했거나, 이제 히브리어 알파벳 겨우 10단어(?) 정도 아는 필자의 수준으로, 교역자님들께 물어물어 살펴본 ‘同行’의 히브리어 표현에 새삼 놀랐던 적이 있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창5:22 의 ‘동행’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설교 중 지겹도록 들었던 그 유명한 ‘히트할레크’ 라고 한다. ‘할라크’는 ‘걷다, 왔다 갔다 하다’라는 의미이며 ‘히트’는 스스로(Self)라는 의미이다. 바로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우리는 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버렸다. 월,화,수,목,금,토,일....그리고 또 월요일. 끊임없이 계속 “와라, 가라, 또 와라, 또 다시 가라.” 는 말씀에 훈련되었고 “남들 한번 가는 교회, 여기는 일주일에 7번씩 가니?”라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성경은 “부셔라, 만들어라, 또 부셔라, 또 만들어라.” 이 과정을 ‘자원하는 스스로의 심정’으로 반복하였더니 마침내 변화의 길로 올라가버린 에녹을 당당히 소개하고 있다. 결국, 이미 수십년전부터 ‘동행’이라는 단어 속에 변화받는 길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창 6:9에서 노아가 동행했다는 말을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노아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 중에서 완벽한 것을 행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함께 스스로 왔다갔다 했었다."라고 강신택 박사의 히브리어 성경에는 정확히 번역하고 있다. 역시 ”동행했다“ 라는 부분에서 ‘히트할레크’라는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속사의 핵심 인물인 아브라함의 사적을 볼 때, 창 17:1에서 하나님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번역되어 있는 이 부분 역시 ‘히트할레크’ 가 사용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한글과 영어는 다른 형태이지만, 히브리어는 세 인물의 핵심 사역에서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제 겨우 단어 몇 개정도 알아보는, 아직은 낙서(?) 같이 느껴지는 히브리어일지라도 관심 있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니 조금씩 그 핵심 의미가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구속사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하는 이 세 인물들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공통부분이 바로 ‘同行’이었고, 이는 ‘스스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자원하는 마음의 반복적 걸음(동행)‘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을 300년간이나 했다는 에녹의 ’수석 입학생의 합격수기‘가 심히 부담이긴 하지만...
갈라진 발뒤꿈치의 상처 속에
같은 목적지, 같은 속도, 같은 방향이 동행의 3대 요소라 했다. 어찌 보면 내가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써 나와 같은 속도를 맞춰주시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를 끌어당기시며 지금껏 걸어온 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발이 갈라지는 아픔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일게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 동행여정의 종착지를 애써 머리에 그리며 하루하루 옮기는 발걸음이지만, 알고 보니 그동안의 ‘뺑뺑이(?)’ 훈련과정이 우리를 앞서 언급한 3대 위인들과 동기동창급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한 한 아버지의 배려의 기다림이었다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이제 그 마지막 코너를 돌아가려고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길 가속페달을 꾹 밟는 그 발버둥! ‘同行’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할라크의 힘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냥 ‘할라크’냐 ‘히트할레크’냐에 따라 동행의 종착역의 간판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임이 심히 부담스런 일이다.
나의 갈라진 발뒤꿈치는 오늘도 그 동행의 마지막 모퉁이를 정확히 돌아가라고 소리를 친다. 조금 아파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으라고 소리를 친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은 지금도 살아서 마지막 천국입시 주관식 시험문제의 정답은 바로 아래 단어 이노라고 조심스럽게 예상문제로 찍어주고 있다.
히.트.할.레.크. 이 다섯 글자만큼은 꼭 외워야 할 것 같은 밤이다.
(편집자 주 - '할라크'는 '히트'와 함께 사용될 때 '할레크'가 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히트할레크'와 '할라크'로 각각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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